[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자택을 일반인에게 개방해 문화공간으로 운영하는 하우스테이너(housetainer)가 늘고 있다. 하우스테이너는 하우스(house, 집)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 연예인)의 합성어다. 이들은 집에 담긴 스토리와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각종 모임, 전시, 공연, 강의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전원주택은 도시의 주요 주택인 아파트와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 독립적인 공간에 마당, 정원, 텃밭, 별채 등이 있어 실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이연희(58) 씨는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전원주택에 살고 있다. 지난 5월 초, 서재 겸 작업장이었던 별채를 남편과 리모델링해 카페 ‘연못둔치’를 오픈했다.
연못둔치는 단순히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아니다. 아마추어 예술인들이 모여 문화와 예술을 교류하고, 공연과 전시도 하는 프랑스의 살롱(saloon) 같은 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아마추어 예술인 아지트’의 주인장을 꿈꾸는 하우스테이너 이연희 씨. 그를 만나기 위해 청계산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갔다.
Q.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뷰 맛집이네요. 언제부터 이곳에 살고 계시나요?
마당에서 청계산의 푸른 능선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어요. 나들이 갈 필요를 못 느끼죠. 숲에서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요. 전원주택의 매력이지요. 이곳은 1994년 알게 됐어요. 딸이 아주 어렸을 때에요. 서울 수서역 부근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도시의 북적대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실은 도시에 만연한 경제적 서열화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어느 동네 몇 평 아파트에 사는가? 연봉은 얼마인가?”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때 ‘전원주택’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죠. 땅값이 저렴한 수서 남쪽 지역(성남)으로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녔어요. 금토동이 맘에 들었고 자주 놀러 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원주민 할아버지가 이 땅을 소개해 주셨어요. 3일 후 바로 땅을 구매했지요. 이런 것을 ‘운명적 만남’이라고 하나요? (웃음)
Q. 땅을 사고 바로 집을 지었나요?
덥석 땅을 샀지만 당장 집 지을 돈이 부족했어요. 그린벨트라 개발이 엄격하게 제한됐고요. 형질 변경, 이축(移築), 건축 허가 등 행정 절차만 5년이나 걸렸어요. 게다가 IMF를 겪으면서 공사가 지연돼 2000년에 입주했지요. 집을 짓기까지 오래 기다리다 보니 집의 콘셉트, 구조, 자재 등을 생각할 시간이 많았어요. 기본적인 설계 도면도 남편과 함께 직접 작성했고요. 건축에 무지했던 30대에 이런 어려움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서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어요.
Q. 집 개방이 쉽지 않은데요. 카페를 오픈하게 된 계기는?
외동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어요. 우리 부부만 남았죠. 남편과의 일상생활 이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새로운 일을 찾게 됐죠. 지인들이 “도시에서 아주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니 카페를 해보라”는 권유를 줄곧 했었어요. 최근, 집 주변이 ‘제2판교테크노밸리’로 개발되면서 이전의 호젓한 전원생활을 지속하기도 어려워졌고요. 그래서 주택과 분리된 건축물은 상업시설로 용도 변경이 가능해 별채를 일반음식점으로 용도 변경했어요. 카페를 장식할 그림, 도자기, 그릇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카페 창업을 결심했죠.
마음이 굳어지면서 하나씩 천천히 준비했어요. 별채에 카페를 꾸미는 일은 제가 주도적으로 했고, 남편은 제 부탁을 ‘취미 같은 일’이라고 투덜대면서도 즐겁게 도와줬죠(웃음). 건축물 용도 변경, 사업자 등록, 주차장 허가 등 까다로운 행정 절차까지 마치는데 꼬박 2년이 걸렸어요. ‘연못둔치’라는 카페 이름은 집터 안에 있던 큰 연못을 추억하기 위해서죠. 이 땅이 갖고 있는 족보랄까요? 개발로 사라지는 땅의 스토리를 담고 싶었어요.
Q. 카페 내부 인테리어가 특이한데요.
인테리어는 기존의 우리 것들을 그대로 재활용했어요. 서재 책꽂이는 카페 카운터와 작업대로 만들고, 남은 목재는 테이블과 벤치로 변신시켰죠. 카페 바닥의 에폭시 페인팅 작업은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남편이 칠을 하고 난 뒤 마르면, 그 위에 제가 아크릴로 그림을 그렸고, 다시 칠을 했죠. 그림 소재는 아끼는 물건, 집 주변 풍경이 대부분이에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남편이 만든 각종 백과사전 CD-ROM, 제1회 ‘인터넷기술상’으로 받은 컴퓨터 모니터 등을 그렸죠. 제가 즐겨 사용하는 커피 서버, 처음 이 집에 이사 와 심었던 백합, 딸이 사용하는 MIT 공대 머그잔도요.
Q. 카페 바닥 그림에서 보았던 물건들을 찾는 재미가 있네요.
카페 안을 둘러보시면 바닥 그림 속 물건을 찾을 수 있어요. 선반 위에 주로 있는데, 제가 만든 작은 도자기들이 많지요. 유화는 벽에 걸려있고요. 도자기와 유화는 남편의 벤처 사업이 힘들 때 위안이 됐던 제 취미에요. 10대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술학원도 다녔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학자와 공직자를 최고로 여기셨죠. 미술은 취미로 남겨두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현실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탈출구 역할을 했죠. 아름답고 화려한 삶에 대한 욕구가 그림과 도자기에 투영된 셈이에요.
Q. 현재 카페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오픈 한 지 2달 정도 지났어요, 11시부터 17시까지 영업하고요. 아직 홍보가 미흡하여 손님이 뜨문뜨문 오셔요. 예약 없이 갑자기 많이 오시면 좀 당황하죠. 주로 우리 부부의 지인이나 집 옆에 있는 대안학교의 관계자분이 찾아오셔요. 청계산 등산객이나 산책하러 나온 분들도 가끔 오고요. 사전예약을 하면 영업시간 이외에도 공간을 빌려드리고 있어요.
저희 ‘연못둔치’ 카페는 실내뿐 아니라 야외 정원에서도 청계산을 바라보며 차와 디저트를 드실 수 있어요. 나무도 많고 그네도 있어 멋진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도 좋고요. 반려견 앨런은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어요. 한 번 오신 분은 다시 방문하길 원하시죠, 주인장의 커피 맛도 일품이고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Q. 앞으로 ‘연못둔치’를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가요?
저희 카페 콘셉트는 ‘아마추어 아티스트 아지트’에요. ‘아아아’라고나 할까요? (웃음) 예술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연못둔치는 흰 도화지라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과 함께 하얀 도화지를 채워가려고요. ‘자유’라는 아마추어 정신을 공유하면서요.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즐거우면 되니까”라는 말처럼요.
그림, 퀼트, 뜨개질, 꽃꽂이, 종이접기, 도자기 등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예술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마추어 예술인도 자기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하고 싶어 해요. 이런 분들에게 공간을 빌려드리고 있어요. 동호회가 만들어지면 전문가를 초빙해 배움의 장으로도 활용하고요. 파티나 이벤트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공간을 대여할 수도 있고요. 특히 아파트에 사는 도시분들이 탁 트인 야외 공간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활동을 펼치도록 돕고 싶습니다.
Q. 전원주택 하우스테이너로서 하고 싶은 말은?
전원주택의 일부를 활용해 카페나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면 우선 법적인 문제를 잘 살펴보셔야 해요. 또한, 수익 창출을 최고 목표로 하지 않기를 바래요. 기업형 카페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취미를 함께 나누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어요. 함께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는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어 보세요. “Welcome fri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