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노인인구(857만7830명)는 전체 인구(5174만4876명)의 16.6%다. 추정치매유병률이 10.3%니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다. 치매관리비용은 약 18조 원, 1인당으로 환산하면 대략 2,124만 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어 치매 예방과 관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50+건강코디네이터, 치매 예방 활동
서울시는 치매국가책임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치매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보람일자리인 50+건강코디네이터사업단을 7년째 추진하고 있다. 50+건강코디네이터(이하 건강코디)는 거동이 불편하여 치매안심센터 방문이 어려운 경도인지장애(치매와 정상 노화의 중간단계) 또는 치매 초기 어르신의 자택을 방문해 인지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올해는 수요가 늘어 150명의 건강코디가 4월부터 약 8개월 동안 14개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구치매안심센터에서 만난 박미애 씨는 건강코디를 5년째 하고 있는데, 오늘도 파트너와 함께 어르신 댁을 찾았다. 건강코디는 2인 1조로 활동한다.
인생학교가 삶의 방향을 바꾸다
박 씨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고향인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상경해 취업했고, 결혼 후 가정에만 충실했다. 나이 차이 많은 남편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큰 걱정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퇴직을 앞둔 남편이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앞이 캄캄했어요. 남편이 없으면 어찌 살아야 할지 무서웠고요. 50대 중반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보니 판매직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는 것뿐이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자격증이라도 따려고 살펴보던 중 요양보호사를 알게 됏어요. 몸만 건강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요양보호사는 친정아버님이 장기 입원했을 때 곁에서 보아왔고, 주변에서도 이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 많아 도전했고, 2016년 취득했어요.”
골프, 민화 그리기, 도자기 페인팅 등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지내던 박 씨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했다. “또래 여자들은 무엇에 관심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지낼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을 때,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의 인생학교를 만났고,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취미생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인생학교 친구들을 보니 개인 생활을 하면서도 사회참여 활동도 하더군요. 부러웠어요. 저도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박 씨는 인생학교 수료 후 보람일자리에 관심을 가졌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갖고 도전할만한 일자리를 찾다가 건강코디를 발견하곤 바로 신청했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기회를 잡았다.
“전 남들보다 철이 늦게 들었어요. 뒤늦게 세상 물정을 알게 됐고, 저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확 바뀌고요.”
“어르신 치매 예방, 제가 도와드려요”
박 씨는 일주일에 1~2회 어르신 댁을 방문한다. 학습교구가 빼곡하게 들어간 가방을 메고 언덕길을 오르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오늘 만날 어르신은 어떤 분일까.
“어르신(81)은 몇 년 전 배우자분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혼자 임대아파트에 살고 계세요.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시고, 심지어 자식에게 생활비 받는 것도 죄스러워하세요.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이 다른 집에서 주무신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복도식 아파트인데 지남력(指南力)에 문제가 생겨 집을 잘못 찾으신 것 같아요. 놀란 자녀가 달려와 치매안심센터로 모시고 가 검사를 받았는데 치매 초기라는 결과를 듣게 됐죠.”
방문 전화를 받으신 어르신은 현관문을 열어놓으셨다. “어르신~ 저 왔어요~” 박 씨의 경쾌한 목소리에 곱게 차려입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자식보다 더 자주 만나는 박 씨는 부모님인 듯 어르신을 따뜻하게 대한다.
치매 예방에는 운동이 필수
독거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 성경책을 읽고 새벽기도를 하지만 허허로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박 씨는 앉자마자 어르신의 안부부터 묻고 식사 여부도 꼼꼼히 챙긴다.
박 씨는 본격적인 인지프로그램에 앞서 고무 밴드를 활용해 굳은 몸을 풀어드린다. 양쪽 팔을 수술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이지만 4년 동안 박 씨와 함께 꾸준히 스트레칭해 팔이 높이 올라가고 동작도 잘 따라 하신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13%는 운동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손 운동인 박수는 대표적인 치매예방체조인데, 말초신경을 자극해 뇌의 혈액순환을 증가시키고 인지기능 향상도 돕는다.
놀이를 통해 인지기능 강화
박 씨는 첫 번째 인지프로그램으로 공간지각력과 집중력을 길러주는 칠교놀이를 준비했다. 스마트폰에 담아온 다양한 ‘집’ 모형을 보면서 7개 조각을 퍼즐처럼 맞춰 완성한다. 우선 색종이 퍼즐로 집 모형을 완성한 뒤 플라스틱 퍼즐로 반복 연습한다. 어려운 단계의 모형을 만들 때는 박 씨가 도움을 드리지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드리고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모형이 완성될 때마다 “참 잘하셨어요~” 칭찬에 성취감을 느끼신 어르신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두 번째 인지프로그램은 여러 개의 컵으로 인지기능 강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컵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높이 쌓아 개수를 세고, 다시 컵을 포갠 뒤 맨 위의 컵을 맨 아래로 하나씩 옮긴다. 집중력과 순서화 능력을 길러주는 활동인데 어르신의 손이 살짝 떨린다. 하나씩 컵을 뽑아 옮기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컵을 떨어뜨리게 된다. 컵에 쓰여 있는 숫자를 활용해 합이 ‘20’이 되도록 컵을 골라 모으는 수리력 훈련도 한다. 컵의 색을 묻고 같은 색의 과일을 말해보는 언어능력도 일깨워드린다. 하나의 교구로 여러 활동을 진행하는 박 씨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읽고 쓰는 능력도 중요
말하기, 읽기, 쓰기 등의 언어능력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기본이다. 매일 성경을 읽고 조금씩 필사(筆寫)를 하지만 자꾸 맞춤법이 틀리고 발음도 꼬인다. 인지학습워크북이나 치매안심센터가 개발한 학습자료를 이용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써보게 한다. 평소 글 쓸 일이 거의 없으시지만 치매 발전 속도를 늦추는 활동이다.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해 항상 맘에 걸리셨나 봅니다. 한글 공부에 욕심을 내셔요.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 정성껏 쓰십니다. 이 순간만큼은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시고요.”
등을 구부리고 안경 너머 작은 글씨를 읽고 쓰느라 고생하신 어르신. 이젠 마무리할 시간이다. 필사 숙제를 받아놓고 다시 스트레칭을 하신다. 뻣뻣해진 팔과 손가락이 시원하게 풀린다.
“어르신! 다음 주에는 한 번 올 예정이에요. 그동안 숙제도 하시고 몸이 찌뿌둥하실 때마다 스트레칭과 손 운동도 하셔요~. 식사도 잘 챙겨 드시고요.”
“고마워요. 박 선생님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고 몸도 부드러워졌어요. 또 와야 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박 씨의 손을 꼭 잡은 어르신의 표정에 못내 아쉬움이 묻어난다. 항상 만남은 반갑고 헤어짐은 섭섭하다. 어르신을 홀로 두고 나오는 박 씨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아 보인다.
“보람일자리는 자치활동 2시간과 월례회의 2시간을 포함한 총 활동 시간이 월 최대 57시간이에요. 올해는 방문을 원하는 어르신이 늘어나 방문 횟수가 줄었어요. 건강코디를 더 많이 뽑아 주 2회 방문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어르신이 손꼽아 기다리시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요.”
안타까운 기억
박 씨는 건강코디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어르신 두 분이 있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지난해 방문했던 할아버지(83)는 인지능력과 건강도 그다지 나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활동을 종료한 뒤 한 달 만에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어요. 믿기지 않았고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건강코디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도 했고요. 바로 곁에 계셨던 분이 떠나신 허전함을 채우기 힘들었어요.”
“미용실 원장을 하셨던 80대 초반 어르신은 착한 치매를 앓고 계셨지만, 일몰 증후군(sunset syndrome)이 있었어요. 해 질 무렵이 되면 불안이 심해져 보따리를 싸셨죠. 반려견에 대한 애착과 의심도 강하시고요. 후견인과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우신 독거 어르신이셨어요.”
협업과 지원 있어 장기간 활동 가능
박 씨가 건강코디 전문성을 키우고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에는 도심권50+센터와 중구치매안심센터의 협업과 지원이 있었다.
“매달 도심권50+센터에서 보수교육을 했어요. 새로운 학습교구를 활용한 수업모형을 실습했고, 서로서로 정보를 교환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건강코디 입장에 서서 불이익이나 상해를 당하지 않도록 챙겨주시기도 했고요. 중구치매안심센터도 저희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신뢰를 아끼지 않으셨고, 필요한 교재와 교구를 지원해 주셨어요.”
자세·걸음걸이 돕는 강사 계획
2018년 건강코디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인을 위한 서비스 분야가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노인 관련 공부를 깊이 있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듬해 사회복지사 2급, 노인교구지도사 2급, 실버댄스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2021년에는 실버체조지도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2020년,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시니어모델학과에 입학해 이론과 실기 모두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니어모델학과 특성상 3학년 편입이 안 되고 4년을 온전히 다녀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목표와 꿈이 있어 도전했다. 학비는 건강코디 활동비를 받아 충당하고 있다.
“시니어모델학과를 졸업하면 복지관 어르신들의 올바른 생활 자세와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 등을 강의하고 싶어요. 런웨이를 걷는 패션쇼도 진행하고요. 머플러, 모자, 원피스 등의 드레스코드를 정한 뒤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활동,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나요? 어르신의 자존감이 확 살아날 겁니다.”
10여 년 동안 취미로 민화를 그리고 있다. 7월부터 홍제커뮤니티센터에서 민화 강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10년 뒤, 민화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박 씨는 벽화 그리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비록 모래사장의 모래알 같은 존재일지라도 선한 영향력을 주변에 드리고 싶다는 박 씨의 마음씨가 민화 속 연꽃처럼 곱고 잔잔하다.
박미애 씨는 “세대 통합형 사회공헌 활동인 건강코디네이터사업단 활동은 어르신을 위한 사업이지만 활동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며, “나이가 들수록 치매유병률은 높아지는데, 치매 원인을 알고 미리 대비한다면 건강한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