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형석 기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와 물려 받는 자녀가 모두 고령자가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령사회가 가져온 변화로 인해 상속 관련 주요 화두인 배우자 상속을 비롯해, 주택연금, 노노상속, 유류분 제도에 대해 각각 풀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는 분석이다.
개인과 자본시장, 정부가 각각 고령화로 인한 상속시장의 변화와 과제를 인식하고, 현재 발생하고 있거나 앞으로 발생가능한 문제들에 대해 사전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다.
피상속인 절반 이상이 80세 이상 고령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자산 규모는 2003년 12조원에서 2017년 35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상속거래 건수는 같은 기간 22만건으로 동일했지만, 금액이 3배나 늘었다. 피상속인 1인당 평균 상속금액도 2003년 5200만원에서 2017년 1억5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연구소 측은 이 같은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상속자산의 주요 특징을 4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재산을 물려주는 피상속인 중 80세 이상이 절반을 넘는 51.4%에 달했다. 둘째, 상속금액은 10억~20억이 38.4%로 가장 많았다. 셋째, 물려주는 재산 중 부동산이 59.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금은 평균 상속재산의 17.2%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국내 가계 보유자산 가운데 3분의 1(31.7%)은 60대 이상이 보유하고 있었고, 또 다른 3분의 1(29.5%)은 50대가 보유하고 있었다. 자산의 3분의 2를 50대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 자산의 대부분을 보유한 50대 이상이 고령층에 편입되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게 이 연구소의 주장이다.
상속자녀가 고령인 경우 내수소비 하락 영향
상속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가 이전되는 개념이다. 부가 이전되는 만큼 개인은 물론, 경제,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젊은층이 줄고 고령인구가 절대다수가 되는 고령사회에서는 상속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첫째,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생애주기 관점에서 전체 노후자산 가운데 얼마를 소비하고 얼마를 상속할지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시기와 방법, 대상도 결정해야 한다. 이 같은 결정은 노후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은퇴 후 살아야 할 날이 긴 고령사회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된다.
둘째, 경제적으로는 노인인 부모가 노인인 자녀에게 물려주는 상속이 문제가 된다. 자녀가 노인인 경우 상속재산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수 소비가 하락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후 노노상속이 문제로 대두됐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을 정도다.
셋째, 상속재산을 놓고 벌어지는 가족 내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 즉 자녀 등 상속인이 법적으로 일정 비율씩 나누도록 한 민법에 근거한 소송에서 청구금액 1억원 이하가 절반 이상 차지한다. 상속분쟁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배우자, 상속재산 자녀 분할하면 ‘곤궁’
상속과 관련,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배우자가 상속하는 경우다.
우리나라 60대 이상 고령가구의 평균 총 자산은 4억1000만원, 이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3억2000만원으로 무려 78.2%에 달한다.
그런데, 현행 민법은 거주주택 상속 시 배우자의 몫은 자녀의 몫보다 0.5배를 가산하고, 자녀들에게는 균등분할 상속하도록 돼 있다. 생존한 배우자는 자녀가 1명일 때는 60% 지분을 갖지만, 2명일 땐 42.9%, 3명일 땐 33.3%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부부가 슬하에 두 자녀를 뒀고, 남편이 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 한 채만 남기고 사망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두 자녀가 재산분할을 요구하면 아내는 주택을 처분해 자녀 몫으로 각각 1억원씩 2억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1억5000만원으로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야 한다. 생존한 아내가 이 돈으로 거주지뿐만 아니라 노후생활비까지 해결해야 한다면 삶의 질이 크게 낮아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민법 개정을 통해 ‘배우자 거주권’을 신설해 자택을 유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4년 배우자의 상속비율을 50% 이상 높이는 민법개정안이 논의된 바 있지만, 법 개정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택연금 승계하려면 자녀동의 ‘걸림돌’
최근 주택연금 가입자가 누적 6만 5000명을 넘어섰다. 주택연금 가입자 증가는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주택자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높아지고, 주택 상속에 대한 의지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는 2가지 배경이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주택을 미래 상속재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 주택연금 가입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미래 주택 상속을 대가로 자녀에게 봉양 또는 효도를 바라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 사후 상속을 기대하면서 주택연금 가입을 반대하는 사례도 있다.
주택연금과 관련한 가장 실제적인 문제는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가 주택연금을 이어 받기 위해서는 자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2016년 자녀들 반대로 주택연금 가입자가 사망한 후 배우자가 연금을 이전 받지 못한 사례가 20여 건에 달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금융위원회가 지난 3월, 주택연금 가입자 사망 시 자녀 동의 필요 없이 배우자에게 자동으로 주택연금이 승계되는 ‘신탁형 주택연금’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주택금융공사가 ‘신탁형 주택연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신탁사업자 지위를 얻어야 해 ‘주택금융공사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현재 법 개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상속자녀 고령일 경우 자금동결 사회문제
우리나라 고령자의 평균 사망연령이 높아지면서 80대 이상 고령자가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자산을 상속하는 이른바 ‘노노상속’이 크게 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노노상속으로 인해 사회 전반의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고, 치매로 인한 자산동결 가능성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우선,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기의 자산운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장롱예금’도 증가하고, 저금리 기조와 고령자의 안정 추구 성향이 겹쳐 현금을 집안에 쌓아두는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치매로 인한 자산 동결도 문제다. 최근 일본 언론에는 ‘치매 머니’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을 말하는 ‘치매 머니’는 본인 동의가 어려워 인출이나 처분하지 못해 자산이 실질적으로 동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노노상속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고, 내수소비 활성화를 위해 손자손녀에 대한 ‘교육자금 증여’에 한시적으로 비과세를 적용하는 등 원활한 세대 간 자산 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치매 머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자식에 상속 강제하는 ‘유류분’도 문제
민법상 유류분 제도가 있다. 재산을 물려주는 피상속인이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유언했더라도, 상속재산의 절반은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에게 물려주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앞선 예와 같이 두 자녀를 둔 부부의 남편이 전 재산 7억원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더라도 절반인 3억5000만원은 아내와 두 자녀에게 상속돼 아내는 1억5000만원, 두 자녀는 각각 1억원씩 상속받을 수 있는 제도가 유류분 제도다.
하지만,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1977년과 달리 고령화로 인해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의 평균 연령이 중장년층이 된 데다 경제력도 갖추고 있어 이 제도가 필요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고령층은 자신을 부양하지도 않고 관계도 좋지 않은 자녀들의 유류분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이 오랜 기간에 걸쳐 모은 재산을 원하는 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돌봄을 제공하지 않더라도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상속자산을 대가로 자녀의 돌봄을 제공받는 이른바 ‘전략적 상속’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류분 제도의 합리적 운영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