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에 힘입어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는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연구조사한 결과 60세 이상 노년층 가운데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활용하는 모바일 뱅킹 이용률은 5.5%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뱅킹은 더 쉽게 거래할 수 있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노년층은 여전히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은행을 찾아가 줄을 서서 직접 거래한다는 얘기다.
노년층의 낮은 디지털 활용률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매년 실시하는 디지털격차 실태조사에도 나타난다. 조사 발표 때마다 6가지 주요 인터넷 활용 항목 모두 60대 이상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디지털격차는 시간과 돈, 즉 거래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초래하고, 세대갈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마저 단절시킬 수 있는 만큼, 노년층에 대한 디지털 교육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모바일 뱅킹, 70대 이상 10명 중 1명도 안돼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 70대 이상 노인이 10명 가운데 1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응답자 가운데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최근 3개월 이내에 이용했다는 응답자는 6.3%에 불과했다. 30대 87.2%, 40대 76.2%가 “이용했다”는 응답과 크게 대비된다.
50대까지 51.0%로 과반을 유지했지만 60대에선 18.7%로 떨어지면서 연령대가 높아갈수록 이용률은 급감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을 이용한다는 70대 이상 노인은 0.1%로 거의 없었다.
70대 이상 고령층의 58.8%가 “모바일 금융 서비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각종 모바일 서비스가 고령층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간 지날수록 커지는 디지털격차
최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내놓은 ‘2018년 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도 고령층의 디지털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을 100점으로 봤을 때, 노년층의 역량은 50점에 불과했다.
노년층은 일반 국민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디지털정보화 역량을 갖고 있는 셈이다. 연령별로 50대는 82점으로 격차가 크지 않지만, 60대는 53점으로 크게 떨어지고, 70대 이상은 27점에 불과했다.
노년층은 인터넷 이용률과 스마트폰 보유율도 각각 69%, 68%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으로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다거나, 기부·봉사활동참여, 공공기관 민원제기와 같은 온라인 사회참여 활동에서도 일반국민을 100점으로 했을 때, 노년층은 60점에 불과했다.
소득증대나 유지에 도움이 되는 정보습득을 비롯해, 취업·창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같은 온라인 경제활동도 일반국민이 100점이라면, 노년층은 60점에 그쳤다.
노년층 10명 중 9명(89.8%)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원인으로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사용방법이 어렵기 때문’이란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용자에게 편리성을 주기 위해 개발되는 디지털 정보기술들이 노년층에게는 오히려 디지털 정보격차의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모바일 금융혜택 못 받는 노년층
디지털 격차로 인해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는 거래비용의 양극화다. 즉,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할 경우 일상생활에 수반되는 다양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디지털 기술에서 멀어질수록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를 테면, 요즘 젊은이들은 좀처럼 은행에 갈 일이 없다. 계좌이체와 같은 간단한 은행 업무는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1~2분 안에 해결할 수 있다. 이 같은 모바일 뱅킹을 활용하면, 수수료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어르신들은 은행 볼일이 있을 때 여전히 은행 점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 조사에 따르면 최근 금융거래에서 은행 창구를 이용한 사람이 10명 중 1명(9.5%)에 불과했는데, 모두 고령층이란 얘기다.
디지털 격차는 대중교통이나 문화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먼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대중교통이지만 디지털화가 확산되면서 노년층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지난 설연휴 기차표 예매 과정에서 역 현장에서 이뤄진 예매비율은 7%(6만석)에 그쳤다. 반면,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93%(77만석)에 달했다. 온라인 예매 이용방법을 모르거나 상대적으로 손이 느린 노년층은 좌석을 잡기 어려워졌다.
가짜뉴스 주된 ‘먹잇감’도 노년층
노년층이 디지털 서비스에서 소외된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에 둔감해진다. 일정 수준의 디지털 디바이드는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디바이드’로 불리기도 하는 디지털 격차는 세대격차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디지털 복지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가짜뉴스’에 현혹되는 주요 연령층이 고령층이란 사실이다. 여론형성 측면에서 일부 고령층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극단적인 가짜뉴스 확산을 부추겨 ‘세대갈등’과 ‘사실 왜곡’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의 경우 젊은이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미디어 활용도가 떨어지고, 사용하는 미디어 플랫폼도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 문화가 달라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도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미디어 리터러시, 즉, ‘미디어를 읽고 쓰는 능력’ 측면에서 ‘가짜뉴스’로 상징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령층에 대한 디지털 교육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격차 해소 위한 법적 강제조치 필요
고령층의 디지털 이용 수치가 청년이나 장년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조사와 같이 70대 이상 모바일 서비스 이용률이 5.5%에 불과하다면 당장 대책이 필요한 사회문제로 상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60세를 넘어서면서 디지털 이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은 ‘디지털 복지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갈수록 고령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을 방치하면 사회적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금융서비스는 우리 생활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우리나라는 디지털격차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에 따라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전담기관으로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설립돼 고령자를 비롯해 저소득층 가정, 장애인, 다문화가족의 정보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강제성이 없어 실효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보약자의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법을 통해 일상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강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시급한 과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올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버세대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실천 매뉴얼’을 개발해 도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 역시 ‘생애주기별 미디어정보 리터러시’ 교재의 일환으로 시니어 파트를 만들어 노인 대상 미디어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 노인복지관을 비롯해 민간자원과 협력,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