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형석 기자] 우리나라 퇴직세대는 자식 교육과 결혼 뒷바라지 등으로 노후준비가 늦어지고, 여기에 조기퇴직과 공적연금 빈약과 같은 외부요인이 더해져 노후에 소득절벽에 직면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던 시기에는 잘 키운 자식이 노후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지만, 현재는 자식이 오히려 부모의 노후를 빈곤에 빠뜨린다는 분석이다.
특히, 70세 이후 고령층에서 주로 자식의 결혼과 분가로 인해 가구분화가 발생하는데, 노인과 자녀 가구의 분화로 인해 노인세대 소득이 분화 전 가구소득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황혼이혼으로 노인세대가 1인가구로 또 다시 분화될 경우 소득절벽은 현실화되고 최악의 빈곤상태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자식 뒷바라지에 노후준비 놓치는 부모들
보험연구원은이 최근 발표한 ‘가구분화에 따른 노인빈곤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를 차지할 만큼 높은 원인으로 자녀분가와 황혼이혼과 같은 가구분화에 따른 요인이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가구분화에 주목했다. 즉, 가구분화로 소득이 없는 노인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구성하면 빈곤가구로 편입돼 노인빈곤율을 높인다는 것.
보험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가구분화는 자녀의 결혼으로 50~60대 중고령 시기에 주로 발생하므로 조기에 분가가 이뤄지는 국가들에 비해 단계적인 노후준비를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20대 가구주 비중이 우리나라는 18.7%에 불과한데, 일본 33.5%, 노르웨이 35.9%로 우리나라보다 15% 이상 높은 상황이다.
부모 60대에 자녀분가→노인빈곤 전락
우리나라 노인가구 구성 형태를 보면, 439만 노인가구 중 △노인자녀세대와 초고령 부모노인세대로 구성된 노노세대가구는 1% △노인과 자녀로 구성된 노인·자녀가구는 16.1% △노인부부가구는 33.2% △독거노인가구는 34.2%를 차지한다.
보험연구원은 “부모세대가 40대가 될 때까지는 자녀의 분가가 발생하지 않다가 50대에 3인 가구로 일부 분화되고, 60세 이상에서는 자녀세대가 대부분 분가하면서 부모세대는 2인가구가 되는 사례가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노인가구 10가구 중 7가구(67.4%)가 부부 또는 독거인데, 대체로 퇴직 이후인 60세 이상 노인가구에서 분화가 발생할 경우 노인빈곤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구형태의 변화와 빈곤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자녀 분가 후 소득 급감, 곤궁한 삶
보험연구원은 “노인빈곤 문제는 노후소득 부족이 궁극적인 원인이지만, 노년기에 주로 발생하는 자녀 분가와 황혼이혼 등에 따른 가구분화도 노인빈곤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특히 자녀와 함께 거주하는 노인·자녀세대 가구가 분화될 경우 노인세대의 소득은 분화 전 가구소득의 38.7%로 나타나 빈곤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다.
국내 노인·자녀세대로 구성된 가구의 가구소득은 월 407만원인데, 해당 가구가 분화될 경우 월평균 소득이 87만원으로 나타나 원가구 소득 대비 38.7% 수준으로 축소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보험연구원은 “가구 규모 변화가 노인빈곤율 산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득 정책과 더불어 가구 형태 변화를 고려한 노인빈곤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가구분화를 간과한 채 단순히 노후소득에만 초점을 둔다면 가구분화를 통해 발생하는 빈곤문제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가구 형태 변화를 고려한 소득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부양 관심 ‘1’도 없는 20대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지만, 부모세대의 일방적인 자녀사랑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대부분의 은퇴전문가들은 “이제 자식은 노후보험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사회구조와 가치관,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부모부양에 관심 없는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여실히 나타나기도 한다. 2017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모의 노후를 자식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지 않았다.
이 설문에서 20대 절반이 넘는 52.3%는 ‘부모의 노후 부양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고, 무려 10명 중 7명(72.6%)이 ‘부모의 노후 부양을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돈 얘기에서는 달랐다. 부모와 자녀, 사회 등 각 주체별로 ‘노후 부양책임 비율이 얼마여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부모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비율이 38.9%로 가장 높게 나왔다. 20대 본인의 부양책임 비율은 32.8%, 사회와 국가의 책임 비율은 28.3%로 나왔다.
결국, 20대 10명 중 3명만 자신이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머지 7명은 부모가 스스로 책임지거나 국가와 사회가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본인이 책임지기는 부담스럽다는 결과다.
부모 노후생계 책임, 자녀→정부·사회
부모님의 노후는 부모님 스스로, 또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20대들의 철없는 견해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민 절반에 가까운 45.6%가 “부모 노후생계는 가족·정부·사회 공동책임”이라고 답한 것.
부모의 노후생계 책임이 가족(자녀)에게 있다는 응답은 2006년 60.7%에 달했지만, 10년이 지난 2016년 29.6%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부모의 노후생계를 가족·정부·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2006년 29.1%에서 2016년 45.6%로 증가했다. 특히, “부모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한다”는 비율은 2006년 47.8%에서 2016년 58.4%로 증가했다.
가족, 특히 장남을 비롯한 자녀의 부모 부양의식이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면서 노인세대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할 당위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노인세대 편입을 바라보고 있는 50~60대 10명 중 7명(67.0%)은 본인의 노후에 자녀들이 경제적 부양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것.
노후소득 관심 커지는 주택연금
관건은 노후대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노후소득을 확보하느냐에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주택연금을 꼽는다. 우리나라 중고령자 대부분의 자산이 주택에 묶여 있는 만큼, 집으로 노후소득을 마련하라는 뜻이다.
주택연금은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죽을 때까지 매달 현금을 연금처럼 받는 제도다. 국가가 보증하는 대표적인 역모기지 상품이다. 가입자가 사망하면 국가가 해당 주택을 처분해 그간 지급한 연금을 상쇄한다.
주택연금제도는 2007년 도입됐는데, 초기엔 반응이 시큰둥했다. 가입자 1만명을 돌파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최근엔 다르다. 2016년 이후엔 매년 약 1만명씩 가입자가 늘고 있다.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다. 우선, 반드시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졌다. 주택연금의 최대 장점은 살던 집에 계속 머물면서 연금을 받는다는 점이다. 초기엔 “집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주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당장 집의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란 점이 알려졌다.
특히, 자식들에게 먼 미래에 상속하는 것보다 현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부모가 많아졌다. 자녀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집 한 채라도 물려줘야지’라는 생각보단 ‘용돈이나 생활비를 받아 쓰면 그게 더 부담’이란 생각이 강해졌다”고 전한다. 최근엔 자녀가 먼저 상담을 받고, 부모와 함께 방문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