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형석 기자] 고령화에 따라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생애설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50~60대 은퇴 후 생을 마감하는 과거 방식의 생애주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일하면서 행복한 노년기를 맞이하려는 욕구 탓에 생애설계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현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센터를 주축으로 ‘생애설계서비스’가 도입돼 시행되고 있다. 생애설계서비스가 시행되기 전에는 주로 시니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전직서비스’가 전부였다.
생애설계와 전직지원은 엄연히 다르다. 생애설계는 생애 전반에 걸친 체계적인 계획과 실천과제를 상정하는 넓은 의미를 갖는데 반해, 전직지원은 좁은 의미로 특정 시기 근로자의 다음 일자리를 연계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리나라는 IMF경제위기 직후인 전직지원서비스가 도입됐다. 지난해에는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전직지원서비스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에 따라 임시방편적 서비스가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인 생애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생애설계란 무엇인가?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전직지원서비스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첫째, 대부분의 전직지원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을 앞두고 급하게 이뤄진다는 점, 둘째, 실질적 의미의 전직서비스가 아니라 재무와 건강 등 피상적인 교육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 셋째, 전직지원서비스 제공자의 전문성 결여 등이다.
이에 따라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생애 전반에 걸친 자기 성찰과 분석을 통해 보다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생애 목표를 수립하고, 실현 방안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 생애설계란 개념이 도입됐다.
최근 창립된 한국생애설계협회는 생애설계에 대해 ‘개인이 인생의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고, 생애과정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행동계획’으로 정의한다. 단순한 경력계획(career plan)이나 은퇴설계(retirement plan)와 같은 좁은 의미의 계획이 아니라 생애과정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계획으로 재정의한다.
생애설계 어떻게 도입하나?
생애설계는 ‘재직자 생애설계’(life cycle management)와 종합적인 ‘경력개발’(employee lifecycle) 관점의 전직지원과 제도를 연계 융합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손꼽힌다.
일본의 경우, 생애설계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입사 이후 정년 직전까지 회사생활과 관련한 ‘커리어 디자인’(Career Design)에 이어 퇴직 이후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라이프 디자인’(Life Design)으로 구성된다. 주로 50~55세 임직원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실시되는데, 라이프 디자인 교육은 배우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가장 흔한 생애설계 프로그램은 기업이 커리어 및 생애설계 연수를 체계적으로 실시해 회사 성장과 개인의 자립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입사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연령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입사 이후 30세까지는 직무능력과 관련된 기본 소양을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이후에는 커리어 및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선택적인 연수를 실시한다. 특히, 45세를 전후해서는 제2의 커리어 과정(second career program)을, 55세 안팎에서는 퇴직 준비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생애설계 도입 현황은?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장년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인생 후반부 경력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이 운영하는 ‘생애경력설계서비스’다. 이 프로그램은 50~60세까지 근로하고 퇴직하던 과거의 근로생애 틀에서 벗어나, 시니어 근로자가 길어진 기대여명을 고려해 스스로 생애경력을 설계하고 인생 후반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을 지원한다.
서비스 지원 대상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만 40세 이상 재직자 및 구직자다. 이 서비스는 자신의 생애경력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맞는 경력준비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진단결과에 따라 유형별 특성과 행동 전략을 파악, 추천서비스를 제시한다.
만 40세 이상 재직자에게 제공되는 ‘40+ 경력전성프로그램’은 생애경력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력단계에서의 현재 위치 점검과 개인의 경력 유지 개발방법을 학습한다.
만 50세 이상 재직자에게 제공되는 ‘50+ 경력확장프로그램’은 삶의 6대 영역을 진단해 나의 강점영역, 직업역량 도출, 경력설계 방법을 학습하고 자기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만 60세 이상 재직자에게는 일과 삶의 행복을 위해 잠재된 가능성과 생각을 발견해 새로운 방향의 실행방안을 수립하는 ‘60+ 경력공유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선진국은 어떻게 시행하고 있나?
가장 흔하게는 50대 근로자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실시되는 ‘세컨드 커리어 플랜’(second career plan)이 있다. 45~58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조기퇴직우대제도다. 퇴직을 희망하는 근로자에게 급여의 최대 5년치에 해당하는 퇴직일시금을 지급하고, 희망자에 한해서는 회사가 비용을 부담해 전직지원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다.
퇴직 희망여부와 상관없이 50~58세 근로자들의 새로운 의식개혁을 목표로 진행되는 리바이탈(re-vital) 코스, 50~58세 근로자가 직종과 근무지를 선택해 60세 이후까지 근무하는 전문가 코스, 명인이나 명장으로 인정될 만한 50대 후반 근로자를 65세까지 근무시키는 마이스터 코스, 55~58세 근로자를 자회사의 경영진으로 전근시키는 기업가 코스 등도 있다.
연령대별로 퇴직자가 선택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 실질적인 ‘제2의 인생 코스’(second life course)를 설계하도록 돕기도 한다. 이 경우도 입사 직후부터 퇴직 연령기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생애설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가장 단순하게는 우리나라처럼 퇴직 직전의 근로자들에게 퇴직에 대한 인식전환을 비롯해 건강, 재테크, 자녀교육, 전직·창업 등에 대해 교육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생애 전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사회초년생부터 퇴직 이후를 준비하도록 지원하는 방안 거론된다.
숙명여대 김규동 교수(글로벌서비스학부․경영학 박사)는 “생애설계 프로그램은 퇴직 직전의 근로자들에게 제공하는 소극적인 전직지원서비스가 아니라 입사 이후 모든 연령대의 직원들에게 적용하는 재직자 생애설계제도 도입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과 가족, 자아실현이란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경력개발과 경력관리, 전직·퇴직지원, 은퇴준비교육, 생애설계, 가족·심리상담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한국생애설계협회 최성재 회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이른 나이부터 생애설계 교육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년이나 퇴직을 앞두고 있는 경우 차근차근 본인 인생계획을 세워보고 5년, 10년, 퇴직 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생애설계를 왜 해야 하는지,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나름대로 가치있는 철학적 판단의 근거는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