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을 불러모아 공연이나 선물을 제공한 뒤 상품을 판매하는 한 방문판매업체에서 대거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방역에 초비상이다. 특히, 이 방문판매업체에서 감염된 환자 대부분이 60세 이상 고령인 데다, 이 업체를 출발점으로 수도권 전역으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노인요양원에서 다시 감염이 확산되면서 이래저래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어르신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할 일도, 갈 곳도 잃은 어르신들이 이번 감염병 사태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방역당국은 어르신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다.
다단계 방문판매업체서 집단감염, “올 것이 왔다”
서울 관악구에 자리한 한 다단계 방문판매업체가 6월 초부터 코로나19 감염의 새로운 시발점이 됐다. 이 업체는 고령자들을 불러모아 공연을 하거나 선물을 나눠주고 건강용품 등을 판매하는 이른바 ‘떴다방’ 형태의 영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 대부분이 고령자란 사실이다. 6월 13일 기준 이 업체에서 감염된 감염자 153명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자가 56%에 달했다. 게다가 문제가 된 방문판매업체는 관할 관악구청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업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집단 감염이 발생한 방문판매업체는 관악구에 방문판매업으로 등록하지 않은 ‘무등록’ 업체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방문판매업을 하려는 방문판매업자는 사무소 소재지 시·군·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 조사결과 이번에 문제가 된 방문판매업체는 해당 구청에 방문판매업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방역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방문판매업체, 밀폐된 판매장서 노래부르고 공연
이 업체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위중한 시기에 고령자들을 불러모았고, 이 업체의 밀폐된 판매장에 입장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다닥다닥 붙어 않아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방문판매 특성 상 참가자들이 지역사회에 돌아가 상품을 설명하면서 또 다른 감염을 일으켰다.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 박영준 역학조사팀장은 12일 브리핑에서 “이 방문판매업체에서는 다단계판매라는 업무를 통해서 감염이 됐고, 이분들이 이후에 접촉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며 “소규모 커뮤니티를 통해서 방문판매·설명 등을 많이 해 추가적인 전파가 됐다”고 설명했다.
방대본 정은경 본부장도 “방문판매업체는 굉장히 좁은 환경에서 장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노래 부르기나 음식 섭취 같은 비말이 많이 생기는 행동이 장시간 있어 감염률도 높고 2차, 3차 전파가 많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물류센터는 노출자 명단도 빠르게 파악되고 비교적 1차 감염자들의 동선도 단순한 편이었지만, 방문판매업체는 참가자 명단 파악도 어려웠고, 1차 감염자들의 동선도 복잡했다는 것이다.
방문판매업체 유행 가능성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번에 서울 관악구 방문판매업체에서 고령의 감염자가 무더기로 발생했지만, 앞으로 이 같은 업체들이 암암리에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떴다방은 평소에도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어르신들의 무료함을 해소해 주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근 떴다방 업체들이 소규모 행사를 열고 있고, 이들을 찾는 고령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 사태로 노인일자리사업이나 아르바이트 등 어르신들이 많이 하던 일자리가 사라진 데다, 대부분의 공공시설이 코로나 사태 이후 운영을 중단하면서 갈만한 곳도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코로나 여파로 수입이 줄어들자 ‘홍보관 선물 되팔기’도 유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문판매업체들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두루마리 휴지나, 비누, 라면 등의 생필품을 나눠주며 호객행위를 한다. 이렇게 행사에서 받은 생필품을 되팔아 용돈을 버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
무더위쉼터 문 닫아 올 여름나기 큰 어려움
6월인데도 벌써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올 여름도 상당히 더울 것으로 예보되면서 무더위 쉼터를 잃게 된 어르신들에게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묻위 쉼터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 쉼터는 각 지자체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과 같은 공용시설에 에어컨을 달고 주민들이 편하게 찾아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무더위 쉼터들이 잇따라 운영을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노약자들이 여름을 제대로 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5월 13일 발표한 ‘2020 여름철 종합대책’에 따르면 올 여름 서울시 내에선 4439곳의 무더위 쉼터가 운영된다. 지난해보다 670(17.8%)곳이 늘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한 번에 수용가능한 인원은 절반으로 줄였다. 이용자 입장에선 쉼터 절반은 문을 닫은 것과 같다.
경기도는 6월 4일 발표한 ‘2020 폭염종합대책’에서 도내 무더위 쉼터에 임시휴관을 권고했다. 광주광역시는 무더위 쉼터 1452곳 중 1193곳(82.1%)의 문을 닫았다. 대전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한 936곳 중 120여곳만 운영하고, 대구는 아예 한동안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더 큰 위험지역 노인요양시설, 코로나 대책 시급하다
더욱 큰 위기는 노인요양시설이다. 6월 11일 서울 도봉구의 한 데이케어센터 이용자 가운데 80대 남성이 확진된 이래 이곳에서만 모두 14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고령자의 경우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사망 가능성이 높아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50대까지는 1%도 안 되지만, 60대 2.6%, 70대 10.18%, 80세 이상 25.66%로 고령일수록 위험성이 증가한다.
서울시는 주로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단체로 나오면서 서울시 소재 전체 주야간보호시설에 휴관이나 가족 돌봄을 권고했다. 다만, 부득이하게 긴급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상자에 한해 시설을 이용하도록 하고, 만약 돌볼 가족이 없을 경우에는 사회서비스원의 방문요양을 활용할 계획이다. 또 데이케어센터와 요양원 이용자에 대해서는 선제검사도 시행할 방침이다.
알기쉬운 코로나19 예방책 홍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코로나에 취약한 고령자층이 일자리와 수입 감소, 이동제한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면서 코로나 감염 위험에 더 빠르게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이 노인들에게 바람직한 코로나 행동요령을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노인이 많다는 내용의 보도는 많이 나왔지만, 노인들이 어떤 행동을, 어떻게 자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세부 지침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고령자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인지를 인식시키고, 일상생활에서 유의해야 하는 행동요령, 상황별 대응책을 알기 쉽게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