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귀농귀촌을 계획하는 분들은 대개 농촌을 감성과 낭만의 공간, 힐링과 치유의 공간, 탈경쟁과 넉넉함의 공간, 인심과 인정의 공간으로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땀과 인내의 고통은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 경향이 있지요. 귀농귀촌에 대한 환상을 깨 보겠습니다. 귀농귀촌인들이 집터와 농지를 구입할 때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사는 ‘바가지’는 애교에 불과합니다. 원주민과의 마찰, 서툰 농사, 그리고 판로의 문제, 도시와 농촌의 문화차이 등 문제가 불거질 여지는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귀농귀촌 과정에서 겪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정리했습니다.
집·땅 살 때 ‘바가지’
십수 년 전 귀촌한 한 방송인은 자신의 귀촌과 관련, “땅을 시세보다 5배를 더 주고 샀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자리에 출연한 다른 방송인도 “시골 땅값은 정해진 기준이 없다. 안성에 15년 전에 터를 잡을 때 마음에 드는 땅을 시세보다 2배 더 비싸게 샀다”고 말해 귀농귀촌인들이 주택·농지 구입 과정에서 흔하게 겪는 ‘바가지’를 고발했다.
전문가들은 도시에서 내려온 귀농인들이 주택과 농지 구입 과정에서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값을 지불하는 만큼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우선, 땅을 살 때 주변 사람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시골 땅값은 시세를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고, 거품이 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도시에 거주할 때부터 관심 있는 지역을 미리 정해 꾸준히 찾아가봐야 한다. 정기적으로 시세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준비기간이 길수록 해당 지역 사정도 잘 알게 되고, 급매물을 잡을 가능성도 커진다.
이상과 너무도 다른 현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평생 살고 싶어.’ 이 노래 가사만큼이나 귀농귀촌인들의 설레는 마음을 적절히 표현한 것도 드물다. 하지만 실제로 시골에 정착해 맞닥뜨린 현실은 이상과 너무도 다르다.
농촌이 감성과 낭만의 공간, 힐링과 치유의 공간, 탈경쟁과 넉넉함의 공간, 인심과 인정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비롯해 책, 잡지, 가이드북, 팸플릿 등에 소개되는 수많은 귀농귀촌 사례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귀농귀촌을 결심, 농촌으로 들어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역경을 극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아간다는 성공 스토리들로 가득하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된 육체노동이나 생활의 불편함, 지역 텃세 등 시골살이의 어려움은 감춰지기 마련이다.
특히, 농촌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시민 유치에 나서면서 농촌의 상품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 유치가 절박한 농촌 지자체의 입장에서 예비 귀농귀촌인은 ‘잠재 고객’이다. 지자체들은 전국에서 열리는 귀농귀촌박람회에 참가, ‘호객행위’를 하고, 도시민 유치를 위한 휴가상품으로 마을축제와 다양한 농촌체험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이처럼 허구적인 이미지에 속아 농촌에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도시와 농촌의 문화적 차이
도시민들은 대체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생활에 전혀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이웃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문화도 심심치 않게 경험한다.
반면, 농촌주민들은 이웃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고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웃의 대소사를 나의 일처럼 꿰뚫고 있다. 내일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그래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미리 결정한다. 그것이 농촌의 일상이다.
도시의 생활문화에 익숙한 도시민들이 농촌에 내려갔을 때 가장 흔하게 격는 생활문화의 격차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부부가 함께 잠을 자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농촌의 라이프스타일을 도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인가.
내 일도 아니면서 서로 챙기고 동참하는 농촌문화를 지나친 ‘간섭’으로 오해할 수 있는 도시민에게 농촌사람들의 ‘관심’은 번거로운 일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태생적 한계, 원주민과의 충돌
귀농귀촌인들이 농촌에 정착하면서 가장 흔하게 겪는 문제가 원주민들과의 충돌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평소 이주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원주민은, 이주민의 집터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가로막았다. 경찰까지 출동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원주민은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집을 짓던 이주민은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 귀농귀촌의 장애요인으로 자금부족(47.2%), 영농기술습득(27.4%), 농기구입 어려움(25.5%), 생활여건 불편(23.8%)에 이어 지역주민과의 갈등(16.1%)이 꼽혔다.
귀농귀촌인들은 농촌 정착 과정에서 이웃과의 충돌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등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노동력에 의존하는 농업의 특성상 주민들이 품앗이를 거부하는 경우나 당장 필요한 농기계 등을 빌릴 수 없는 경우 큰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귀농귀촌인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서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일부 원주민들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농작물, 너무도 막막한 판로 개척
우여곡절 끝에 농작물을 재배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할 곳을 찾지 못했을 경우다. 판로를 찾지 못한 귀농귀촌인들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노동의 대가를 얻지 못하는 상실감도 무시할 수 없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판매다. 농산물은 오래되면 썩기 때문에 제때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판로 개척이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농작물을 수확해 놓고 팔리지 않아 밭이나 창고에서 썩히는 귀농인들이 허다하다.
최규상 경북 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는 “귀농인 대부분이 새로운 작물, 특이한 작물을 찾는데, 혼자 농사를 짓고 판로를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며 “작목반 등을 형성할 수 있는 해당 지역 주류 작물을 선택해야 정책지원을 받기 쉽고 농사와 판매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예상치 못한 자금 부족
예비 귀농귀촌인들은 농촌에 정착하기만 하면 농작물을 재배해 기본적인 먹거리는 물론, 적절한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측’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이마저도 일정한 경험을 갖고 있는 농민들에게나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귀농 직후 초기에는 아예 수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귀농귀촌 선배들의 한결같은 훈수다.
귀농 6년차이면서 충북 영동군귀농협의회를 이끄는 최규찬(60) 회장은 “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막무가내식 귀농은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농식품부 통계에 나타난 농업부문 평균 소득은 3.3㎡당 논 농사는 2500원, 밭 농사는 3500원, 과수는 1만원에 머무는 농촌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충북 영동군 귀농귀촌 관계자는 “귀농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자금 운용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