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로 대접받기보다 조직에 도움 되는 사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많다고 대접받으려하기보다 내가 젊은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현역으로 롱런한 사람들의 주요 특징 중 첫 번째는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에 신경 쓰기보다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두고, 회사와 동료, 후배들에게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장급 임원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계약을 통해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 임원은 항상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것을 롱런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이들은 “나이 들었다고 인정받거나, 고참 대우 받으려 하거나, 귀찮고 힘든 일을 떠넘기기 시작하면 후배 동료들도 불편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본인이 적응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든의 나이에도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 받고 있는 배우 이순재씨 역시 나이로 권위를 세우기보다 주어진 배역과 작품을 위해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 하면 늙어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트콤을 통해 코믹 연기에 도전해 시청률에 일조하는가 하면,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잠든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동안 여행책을 보며 숙소와 여행지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여행하는 다른 ‘할배’들을 통솔하기도 했다.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고 PD나 다른 출연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법도 한데, 언제나 작품을 위해 기대 이상의 역할 변화를 시도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
“회사일 하느라 정신없이 살기보다는 자기 철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왜 일을 하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그리고 나의 앞날은 어땠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 젊었을 때부터 생각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정신없이 수행하다 문득 일정 포지션, 즉 팀장이나 임원 승진에서 누락되면 구성원들은 ‘조직은 이렇게 몸 바쳐 열심히 일해 온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불만이나 분노, 또는 열등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롱런한 인재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외적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롱런한 인재들의 일에 대한 철학을 수립한 공통의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 나의 꿈이나 일의 목적,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 등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내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되새긴다면 불만을 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보다 일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고령에도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했던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발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일하며 얻는 10가지 행복’의 저자 다사카 히로시는 “일에 대한 철학은 현실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닻”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의미 있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3. 나만의 경쟁력을 위한 ‘롱런’(Long-learn)
“이만큼 인정받기까지 지속적으로 공부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은 많지만, 내가 고민했던 문제를 나만큼 깊게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년까지 롱런한 사람들의 세 번째 특징은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년 지도’의 저자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내세울만한 장점이나 특기가 없다면 이제는 정년까지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며, “과거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다하더라도 이제는 현재의 실력으로 평가 받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장은 “인터넷에는 쉽게 설명된 다양한 지식이 널려 있는 세상이지만 이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하며, “젊었을 때부터 탄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나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굳어서’라는 표현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미국 타임지는 “인간의 지식 업무 능력은 45세를 지나 60세까지 발전한다”는 연구결과를 게재한 바 있다.
미국 UCLA 버클리 의대 신경과학자 연구팀이 1958년, 당시 21세 대학생 142명을 대상으로 40년간 장기 임상실험을 실시한 결과, 인간의 뇌기능이 60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이면서, 역시 최초로 컴파일러를 개발하고 ‘프로그램 버그’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는 40대가 돼서야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90세 이후에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지금도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직장에서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해 일했던 분야에 대해 “머리가 안돌아간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은 단순히 ‘노화’라는 통념에 사로잡힌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새겨볼 필요가 있다.
4. 호기심의 끈
“지금 이 나이에도 ‘앞으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생각을 계속 한다. ‘왜 저렇게 될까?’에 대해 궁금해 하고, 지금부터 10년, 20년간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마흔 혁명’의 저자 다케무라 겐이치는 나이를 먹었지만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호기심을 그대로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인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태도로 일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에 대한 경륜이 쌓이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에 대해 “다 해봤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렇게 해야지” 등의 말로 자신의 지식 범주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잘못된 생각을 꼬집은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기존의 틀을 깨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만 롱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뷰에 응했던 한 부장은 “회사생활 20년이면 사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아는 지식이 최고인 양 안주하며 머무르려 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고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그만두면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 상대성 이론 등을 읽어보면 유독 재미있는 분야가 있더라”라며 “60이라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5. 자기 성찰과 감사하는 마음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도 행복 아닌가. 임원이 못 돼서 힘든 것? 글쎄…. 임원들은 일이 바빠 고질적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대신 나는 그런 문제를 나의 이론과 경험을 기반으로 고민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일 아닌가?”
롱런한 인재들의 다섯 번째 특징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이다.
우선 이들은 자기 성찰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즉, 자기 자신의 한계나 약점을 알고 이를 수용했으며, 자신이 지니지 못한 다른 사람의 강점을 인정한다. 또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높았다.
이들에게서는 퇴직할 시점에 임원이 되지 못한 것, 아주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한 것 등에 대해 아쉬움이나 스트레스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과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건강한 것에 감사했고, 나보다 나이 어린 팀장이라도 그를 도와 팀의 성공에 일조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으며, 후배 팀원들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마음도 넓다는 특징이 있었다. 남을 탓하는 부정적 심리는 불안을 회피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감사와 자아 성찰의 마음가짐을 깊이 새기는 삶의 자세는 스스로에게 자아존중감을 북돋워주고 임원이란 자리가 아니어도 스스로 일속에서 성취감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식․선택의 차이, 중년 이후 결정
유명한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중년을 ‘생산성vs침체성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중년은 자신 이외 타인의 발전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생산성을 창출하는 중요한 시기다. 성숙한 사람은 이 시기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경우 관심이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결국 침체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조직 운영 방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조직 내 중년층이 두터워지면서 개인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야만 정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조직에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포지션 획득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상사가 됐다고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상태로 회사생활을 한다면 과연 에릭슨이 말한 ‘생산성’의 창출이 가능할까. 침체에 빠지느냐, 생산성을 내느냐는 결국 개인에게 달린 몫이다.
도움말=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