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준비되지 않은 퇴직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런 현실을 안겨줍니다. 20여년을 오로지 사무직으로 근무한 이철주 강사도 자살예방교육이란 제2의 천직을 찾기 전까지는 절망하고 방황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강사 전문교육을 받고 지금은 청소년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퇴직 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했다면 자원봉사에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자원봉사를 통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강사협회 소속 이철주 강사는 20여년 기업의 관리부서에서 일했다. 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관리직, 한 길만 걸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강단 위에 섰다. 제2의 인생 서막이다.
이철주 강사가 몸담고 있는 인천강사협회는 현역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전직 은행원, 자동차정비공, 일반 직장인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협회 회원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힘겨워 하던 사람들이다. 이철주 강사도 마찬가지였다. 55세에 명예퇴직 후 사회에 나와 보니 기다리고 있는 건 막막함뿐이었다.
직장인들은 급여가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정해진 날짜에 일정한 수입지 들어온다. 이철주 강사는 “퇴직 후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수입이 끊기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가족들이 원망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의 역할인 가족생계비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힘들었지만 그를 괴롭힌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새롭게 어떤 일을 시작하느냐는 질문에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술이 있다면 관련 일을 찾아보겠지만 화이트칼라 샐러리맨 출신은 좀처럼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전했다. 노동부 산하 고용기관에도 수차례 찾아다녔지만 그에게 주어진 일은 임시직 허드렛일뿐이었다. 하지만 안하던 일을 하려니 몸에 익숙지도 않은데다 노하우도 없어 힘들었다. 오히려 동료들에게 피해만 주는 것 같아 위축되고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50세가 훌쩍 넘은 그를 관리직 책임자로 받아줄 회사가 나타날 리 만무했다.
“퇴직을 하고나니 뭣하나 걱정되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너무 막막했다. 기술하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장일 뿐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안하려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닥쳐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퇴직 후 한동안 방황
그 자신이 제2의 인생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해보니 베이비붐세대의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이야 제2의 인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지만 불과 5~6년 전만 해도 흔치 않았다. 그가 명퇴할 때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지금은 은퇴를 앞둔 직원들을 위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은퇴 준비 프로그램이 마련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며 “1년 가까이 다른 직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면 퇴직 후 다른 일을 시작했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이철주 강사가 퇴직 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인천시가 베이비부머들에게 강사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20~30명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강사 기본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이 끝났지만, 그들이 익히고 배운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수강생들이 모여 지금의 인천강사협회를 조직했다.
자살예방교육서 길 찾아
이후 탄탄대로 갈듯했다. 하지만 이철주 강사만은 그러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그동안 일한 분야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전하고 공유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반면, 이철주 강사는 강의를 통해 전수할 마땅한 콘텐츠가 없었다. 줄곧 일반 사무직으로 일한 터라 어떤 내용으로 강의할지 또 한 번의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지인이 자살예방과 관련한 강의는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를 찾았다. 그곳에서 자살예방 교육을 위한 전문교육과 실습을 마치고 비로소 강단에 서게 됐다.
그는 현재 중고교 청소년들은 물론,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한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난 후였다. 강의가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가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열대여섯 명의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고 강의했다”며 “그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줬다”고 말했다. 그 역시 힘든 가정형편에 상고를 졸업했지만 대기업에 들어가자는 각오로 공부에 매진, 결국 대기업 취직에 성공했다. 아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 청소년들과의 소통을 이루며 무사히 교육을 마쳤다.
청소년 눈높이 맞추려 노력
지금이야 청소년들과 어렵지 않게 공감대를 이루고 소통하는 베테랑이지만 그에게도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사실 아들보다도 어린 친구들과 소통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강연한다니 얼마나 따분하겠는가. 당연히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학생부 선생님들이 다그쳐야 잠시 집중할 정도로 힘들었다.”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대로 멈출수는 없었다. 그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친근함을 주기 위해 밝은 옷을 입었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름 패션에 신경을 쓴 것. 얼굴은 바꾸지 못하지만 복장은 얼마든지 젊어보이도록 밝게 바꿀 수 있었다.
또한, 강의에서 첫 5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처음 5분 동안 아이들이 강연에 호기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한 트렌드를 강의에 접목했다”며 “무한도전, 알리바바 마윈 회장, 카카오 의장 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고, 강의 주제에 맞는 맥락을 찾아 접목해 강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고리타분할 것으로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무한도전’을 이야기하며 다가가니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강연 노하우를 하나씩 터득하며 강사로서 면모를 갖춰 나갔다. 그러면서 새롭게 찾은 자신의 재능에 새삼 감탄하기도 한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강의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알지 못한 재능을 깨닫게 된 것이 무척 기쁘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 다시 불러주고 찾아주는 것을 보면 ‘강사로서 자질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을 갖게 됐다.”
가족, 든든한 후원군
가족들도 옆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그는 “특히 아내가 많이 챙겨준다. 강의 자료를 만들고 있으면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신문에 나온 자살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건네 준다”며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모두 이해해주고, 지금은 인생 후반에 좋은 재능을 발견했으니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비부머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한국자원봉사문화’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하게 된 그는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다. 또 청소년진로체험, 사람책(리빙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베이비부머들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심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오로지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실비 지급이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은 현역에서 퇴직 후 많든 적든 경제적인 부담감을 안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회공헌활동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물론 활동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맞는 실비를 책정해야 한다.”
그는 베이비부머로서 성공한 롤모델이 빨리 나타나길 바란다. 그는 “방송인 유재석씨와 같은 삶이 되고 싶은 마음에 방송인을 꿈꾸는 이들이 상당하다”며 “이렇듯 사회공헌활동을 하는데 있어 롤모델을 삼을 만한 사람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롤모델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주자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철주 강사는 지금도 집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에게 뭐든지 도전해 볼 것을 권고했다. 무슨 일이든 하다보면 분명 자신처럼 스스로 알지 못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자원봉사에 도전할 것을 제안했다.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환영하며 열어줄 것이며, 그곳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할 사람이 없어 방치된 일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