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고령자에 집중된 금융피해를 예방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올해 시니어와 관련 새롭게 제정된 법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법으로 평가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기존에는 각 금융관계법령에 흩어져 있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규정들을 하나의 법률로 규정했다. 위법계약 해지권을 비롯해 기존 법령에 없던 새로운 규제들을 신설해 보다 강화된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처음 발의된 법안이 정권이 3번 바뀌는 동안 떠돌다가 8년여 만인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금융피해를 가장 많이 당하는 시니어들의 노후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금융 피해 2명 중 1명은 시니어…금융소비자보호법 절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니어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금융 피해 당사자 2명 중 1명이 55세 이상 고령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은행·증권사가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불완전판매 피해가 고령자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희곤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대별 불완전판매 분쟁자료에 따르면 은행의 경우 60세 이상 피해자가 545건(36.6%)로 가장 많고, 55세부터 59세가 196건(13.1%)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55세 이상 연령의 불완전 판매 건수만 합쳐도 49.7%로 절반에 달한다.
증권사의 경우도 60세 이상이 237건(37.2%)로 가장 많고, 55세부터 59세까지가 97건(15.2%)을 차지했다. 55세 이상 연령의 불완전 판매 건수는 52.4%로 절반을 넘어섰다.ㄷ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분쟁조정 신청은 라임 등 부실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은행과 증권사의 분쟁조정 신청은 2018년 48건에서 2019년 257건으로 5.4배 급증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된 옵티머스 펀드 사태에서도 개인 투자액 2404억원 가운데 70대 이상 고령자가 투자한 금액이 697억원(29.0%)으로 모든 세대 중 가장 많았다.
특징①, 금융사 금융상품 판매시 금지행위 ‘6대 판매원칙’ 규정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금융사들의 금융상품 판매원칙을 6개로 구체화하고 이를 명문화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6대 판매원칙’을 정했다.
6대 판매원칙은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다. 금융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이다.
첫째, 적합성의 원칙은 금융소비자 재산상황에 비춰볼 때 부적합한 상품을 구매 권유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적정성 원칙은 금융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구매하려는 상품이 해당 소비자의 재산상황에 비춰 적정하지 않을 경우 이런 사실을 고지할 의무다. 적합성과 적정성은 기존 법률에 없던 내용으로, 이번에 신설됐다.
셋째, 설명의무란 금융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품 주요내용을 설명할 의무다. 넷째, 불공정 영업행위 금지는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데도 다른 상품 계약강요, 부당한 담보요구, 부당한 편익 요구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다섯째, 부당권유 금지는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수익률을 단정적으로 판단하거나 허위사실을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섯째, 허위·과장광고 금지는 광고 내용에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하는 내용을 추가하고, 해서는 안되는 광고를 규정한다는 것.
6대 판매원칙이 예금성 상품, 대출성 상품, 투자성 상품, 보장성 상품 등 금융상품 전반에 걸쳐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
특징②, 금융피해 이후 금융소비자 사후 구제도 강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앞서 언급한 6대 판매원칙에 따른 판매단계의 규제 외에도 금융소비자에 대한 금융피해 이후 사후구제도 강화하고 있다.
우선, 금융사가 6대 판매원칙을 위반한 경우 일정 기간 이내 고객이 해당 금융상품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위법계약 해지권을 신설했다. 또한, 고객이 청약 철회시 소비자가 납부한 금액을 반환하도록 하는 청약 철회권이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된다. 위법계약 해지권의 행사기한은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로 정하고 있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는 투자성 상품이라도 계약서류 제공일 또는 계얄체결일부터 7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지금까지는 원금을 보장해 줄 수 없는 투자 상품의 특성 탓에 일반 상품에 적용되는 청약철회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돼 인정되지 않았던 소비자 권리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제정안에서 청약철회권 대상인 투자성 상품에 대해 고난도펀드 가운데 집합투자업자가 기간을 정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모집기간이 끝난 후에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 고난도투자일임계약, 신탁계약으로 한정했다.
특징③, 거의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
금융소비자보호법의 또 다른 특징은 법적용 범위가 거의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은행과 보험사는 물론, 금융투자업자, 여신전문금융회사, 저축은행이 취급하는 상품과 그 외 시행령에서 정하는 상품을 금융상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제정안에서는 신용협동조합,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대부업자,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자(P2P업자) 등이 취급하는 상품도 금융상품에 포함시켰다. 바꿘 말하면, 금융업권이 취급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을 받는 금융상품이 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상품 판매업자가 법인인 경우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도록 정하고 있다. 현재 금융사들이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금융소비자 보호 모범규준’을 내부통제기준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이다.
특히, 금융상품 판매업자는 금융소비자보호 전담조직과 전담 임원을 별도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징④, 금융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회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사후 제재도 상당히 강화해 과태로 부과 상한을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 뿐만 아니라 위법행위시 수입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시행령에서는 과징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 수입의 구체적 범위를 정하고 있다. 예금성 상품은 계약에 따라 금융소비자로부터 받은 금액, 대출성 상품은 계약에 따라 금융소비자에 지급한 금액과 이자수입, 보장성 상품은 금융소비자로부터 보험료로 받은 금액, 투자성 상품은 계약에 따라 소비자로부터 받은 금전, 해당 금전을 운용해 얻은 수익으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사의 입장에서 금융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었더라도 위법이었다면 수익의 절반은 토해내야 한다.
금소법, “개인을 보호하는 법적 테두리 마련”
‘금융소비자보호법’은 2011년 처음 발의된 법안과 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법안 통과까지 8년여의 시간 동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대폭 축소됐다. 자금력을 앞세워 국회를 대상으로 엄청남 로비를 벌였을 금융업계의 반발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발의된 법안은, 금융기관이 수익의 최대 3배까지 물어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넣었지만, 모두 삭제되고 과징금이란 이름으로 대체됐다. 금융사의 고의나 과실이 발견되도 금융기관이 벌어들인 수입의 최대 50%까지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처벌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은 모두 빠지고 뼈대만 남은 법”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한 금융기관과 개인 소비자 사이에 싸움이 될 수 없었던 상황을 바로잡은 성과라는 평이다. 모든 정보와 전문성을 갖춘 기업과 시민 개인이 소송을 통해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