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
웰다잉.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 암암리 회자되고 있는 새로운 문화입니다. 복지관마다 웰다잉 교육과 이벤트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인인구 1000만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죽음에 대한 언급을 금기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일상이 움츠러들고 있는 시간들.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고,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지 정립하는 계기를 만든 다면 ‘코로나 때문에’가 아니라 ‘코로나 덕분에’가 될 것입니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윤득형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웰빙(Well-being)은 강조하면서, 죽음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이다. 웰다잉(Well-dying)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다.
A. 한국전쟁 이후 1970~80년대는 생존을 위한 시대였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웰빙의 시대가 막 오른다. 한 카드회사 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2002년)고 외치지 않았나. 먹고사는 데 급급했던 시니어들이 2000년대 들어 삶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드디어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항암제의 고통을 견디며 몸부림치다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그 모습을 부자연스럽게 본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그 유명한 ‘김할머니 사건’으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2009년,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던 ‘김할머니’ 유족들의 소송에서 자기결정권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했다. 같은 해, 서울대병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전의료지시서’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도 내놨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도 2000년대 초반 복지관을 찾아가서 웰다잉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쫓겨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가는 곳마다 대환영이다. 격세지감이다.
Q. 최근 웰다잉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웰다잉-좋은 죽음’에 대한 개념은 불명확해 보인다. 웰다잉, 압축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A. 사실, 쉽지 않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웰다잉이란,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나온 내 삶을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묵상한 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실천의 방법으로 나의 죽음을 가정하고 유언이나 자서전을 작성하기도 하며, 나의 사망기나 묘비문을 써보기도 한다.
1991년 창립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천착하는 목적도 ‘죽음교육’과 ‘슬픔치유’다. 죽음교육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전제 아래, 그렇기에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슬픔치유는 주변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한 관리가 주제다. 이러한 죽음교육과 슬픔치유도 웰다잉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Q. 죽음을 삶의 연속선 상에서 이해하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삶의 종말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식된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죽음 인식, 어떠한 점들을 지적할 수 있는가?
A.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은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내 죽음에 대한 생각과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PC나 온라인게임을 즐기면서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세월호 대참사도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죽음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해인 수녀님께서 201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암 투병 이후 삶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깊어졌다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커졌다. 죽음을 가까이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죽음 교육도 바로 그 지점이다. 나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흔히 반려동물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렇기에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죽음’을 직접 언급하라고 한다. 아이들의 생사관 형성과 성인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나라 40~50대 중년남성들의 매우 높은 자살률이다. 가장 왕성한 사회활동이 이뤄지는 시기에 경제적 난관에 부딪히면서 좌절, 절망하게 되고, 일부는 극단적으로 자살에 이르고 있다. 예비군이나 민방위 교육훈련에 죽음교육을 필수과정으로 포함시키면 어떨까.
Q. 죽음의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존엄사나 안락사 논란이 있었다. 존엄사와 안락사, 어떻게 다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A. 생명 유지 또는 연장 가능성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생명 유지 또는 연장 가능성이 있는데도 본인이 어떠한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다면 안락사의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 생명 유지 또는 연장 가능성이 희박한 임종과정에 있는 분에 대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존엄사다.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Q. 사회적 맥락에서 죽음은 관계의 분리를 의미한다. 죽음을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족과 지인들도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죽는 자와 살아남은 자, 각각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웰다잉은 무엇인가?
A.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임종연구 분야의 개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죽음과 임종에 관하여’(On Death and Dying, 1969)라는 저서에서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를 처음으로 논의했다. 말기 암 등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를 ‘부인-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로 제시했다. 망자의 가족들도 슬픔의 단계에서 동일한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가족의 경우 망자에 대한 화해와 용서가 이뤄졌을 때 슬픔과 죄책감이 줄어든다.
수십 년 호스피스 활동에 헌신하고 있고, 1990년대 출범한 미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를 설립, 회장을 역임한 아이라 바이오크(Ira Byock)라는 분을 소개한다. 아이라 바이오크는 오랜 세월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임종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4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잘가요.”
임종 직전의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치유와 화해를 위해 할 수 있는 4가지 진리를 아이라 바이오크에게 알려준 것이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의 저자 브로니 웨어(Bronnie Ware)는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생활을 접고 말기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그 블로그 기록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브로니가 임종환자들을 보며 정리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가운데 하나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나누지 못한 것’이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Q. 죽음교육,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교육과 서비스가 산발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교육과 서비스의 전문화 또는 표준화, 공유체계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A. 표준강의안이 필요하다. 지금은 교육에 참여하는 분들만 웰다잉을 접할 수 있다.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가 죽음교육 목표에 따라 4가지 대주제를 선정, 20가지 교재를 준비하고 있다. 대주제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이해 △발달기에 따른 죽음 △죽음에 대한 다양한 접근 △장례 등 4가지다. 2021년 2월 출판을 목표로 20가지 교재를 만들어 일반에 배포하는 것이 목적이다.
Q.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중이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 받지 않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이 논란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긍정적 측면, 그리고 개선점은 무엇인가?
A. 우선, 사회 일반에서 죽음을 고찰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인이 무엇이냐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웰다잉 교육을 기반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한 필수 설명 사항들을 교육하고, 본인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법률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현행법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환자 본인의 의사확인 방법으로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된 연명의료계획서 △환자가 사전에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그리고 △환자 의사에 대한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 △친권자 및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 등 4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의료현장에서 환자 본인의 명시적 의사가 반영된 첫째, 둘째 방법보다, 가족들이 결정하는 셋째, 넷째 방법이 더 많이 선택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죽음교육을 통해 본인 스스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Q.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접근성 확보를 위해 어떠한 대안이 있는가?
A. 지방의 호스피스 기관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반면, 대도시 종합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대기자가 넘쳐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반드시 상급종합병원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기환자들이 큰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몰리고 있다. 마지막 임종까지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과시하려는 사회문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상을 당했을 때 대형병원 장례식장을 선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전국 건강보험공단 지사를 통해 등록할 수 있다. 보건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윤득형 회장은…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목회의 길을 걷던 중, 어린 시절 루게릭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과 그 시절 결단했던 꿈을 재발견하고,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에서 청소년 죽음준비교육 연구실장으로 2년간 사역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시카고신학대학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심리상담을 공부했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영성 상담(Spiritual Care and Counseling)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2015년 귀국하여 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으로 일하며 죽음준비교육과 애도상담교육 및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업에 힘쓰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을 비롯하여 몇몇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6년 CBS TV 아카데미 숲에서 ‘윤득형 박사의 슬픔치유학’(16강)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그밖에 각종 언론에 출연했으며, 웰다잉, 죽음, 애도, 호스피스, 사별 애도 관련 강의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슬픔학개론』(2015)이 있고, 역서로는 『애도수업』 (2018), 『굿모닝 : 알렌 박사가 말하는 슬픔 치유』(2017),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요?』(201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