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라는 용어가 대변하고 있는 여러 관련개념들이 있으며 이러한 개념들에는 안락사, 의사조력사(助力死), 죽을 권리 등이 있다. 이들 개념의 가장 핵심은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불필요한 연명을 위한 치료나 질병에 의한 고통의 감내, 가족에게 주는 부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등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생명을 유지하기보다는 죽음의 시기와 방법을 사전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법적 그리고 종교적인 논쟁 등으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비록 여러 민간단체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법적인 승인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상황에 따라 그 표현을 달리해왔으며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로부터 시작한다. 의사들이 자기 환자 중에 질병 말기이며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데 임종까지는 극심한 고통만이 남았고 환자 본인이 간절하게 생을 끝나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요청한 것이 안락사다. 당시 윤리학자들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를 하지 않으면 남용될 우려가 높다는 것과 종교계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한다는 것은 받아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함으로써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 법적으로 용인되지 못하였고 실행하면 살인행위가 된다.
1942년 스위스가 처음으로 법제화에 성공하였으며 그 이후로 벨기에를 위시한 4개국만이 이를 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안락사법에 따라 스위스 국민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의료계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다음 개념은 의사조력사(醫師助力死)다. 질병 말기에 있는 환자가 죽음을 원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미국인 의사 케보르키안 박사가 안락사는 미국에서는 불법이고 살인행위로 인정됨으로 1942년에 안락사법을 통과시킨 스위스에 클리닉을 열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장치를 차려놓고 누구든지 질병의 고통으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와서 스스로 그중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하여 죽음을 결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이때부터 의사 조력사(physician assisted suicide)라고 하는 용어가 보편화하였다.
다음으로 우리도 익숙한 개념으로 생을 유지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장기간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공호흡기의 제거 여부 결정에 대한 법적인 타당성 여부가 한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법적 윤리적 논쟁으로 대두되었고 미국에서는 퀸란 양 사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세브란스 병원의 김 할머니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양 국가의 대법원은 모두 생존했을 때의 본인 생각이 어떠했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하여 인공호흡기의 제거 여부를 인정한 바 있다. 판결의 가장 핵심은 본인이 정신이 맑을 때 미리 그런 경우를 대비 더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중지할 것을 밝혀두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16년에 국회를 통과한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의향서 법에 의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사전에 기술해 놓으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죽을 권리나 존엄사란 개념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안락사나 의사조력사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개념이다. 회복 불가능한 질병의 진단을 받았을 때 앞으로 얼마간 지나면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옷을 갈아입고 변을 보고 닦는 행동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것임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기 전에 환자 자신의 요청에 따라 미리 삶을 끝내게 해주자는 개념이다.
작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29세 난 결혼한 지 6개월 된 Brittany Maynard 여사가 뇌암의 진단을 받고 그 암이 진행하면 머지않아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하게 상실한 상태에서 지내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미 존엄사 법이 통과된 오리건 주에 가서 죽음을 택했고 이 사건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죽을 권리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호스피스에서 근무해 온 76세 간호사 질 패로우 여사가 호스피스에서 사망하는 많은 사람을 경험하고 자기는 그렇게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스위스에 가서 아무 질병도 없지만 스스로 사망을 선택한 것도 존엄사의 한 좋은 예가 된다.
죽을 권리(right to die)란 최소한 두 명의 의사들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3~6개월은 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린 경우 그 6개월을 다 기다리지 않고 그 기간 중 죽음을 맞이할 날 자를 본인이 결정한다는 개념이다. 지난 5월에 캐나다의 Johns Shields(77세) 씨는 생명이 3개월 이상 가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고 의사와 협의하여 죽을 날을 정하고 그 전날 가족과 지인들을 초청하여 이별의 파티를 열고 그 다음날 오전 10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지난 6월 1일 자 ‘New York Times’에 길게 기사화되었는데 바로 좋은 예가 된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안락사, 의사조력사, 죽을 권리 등은 기본적으로 같은 개념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이러한 개념이 점점 세계적으로 확장해 가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인간 존엄성 의식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사망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 사망원인 질병이 급성에서 만성퇴행성 질환으로 바뀌어 사망하기까지의 고통 기간이 길고 병원에서 주로 사망하게 됨으로써 이 기간에 환자의 의견이 사전에 고지되지 않으면 무의미한 의료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의료에서는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한다면 생명으로 인식한다. 현대의학에서는 심장을 뛰게 하고 호흡을 하게 하는 기술이 크게 발전해 왔다. 따라서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배제된 생명만의 연장을 위한 의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 배경을 인식하는 많은 분이 심각하게 존엄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과거 5개 주에서 안락사법 또는 존엄사법을 통과시켰지만 불과 최근 1~2년 사이에 9개 주로 증가하였고 27개 주에서는 의회에 법안이 제안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민간단체 그리고 윤리학자들이 존엄사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으며 많은 분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있는 고령자 중 존엄사법 법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분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윤리학자, 종교인 그리고 법학자들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이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편안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존엄사법의 제정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