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50년대 중반부터 65세를 노인연령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준을 지난 60여 년간 금과옥조로 인식하고 복지, 연금, 은퇴연령 그리고 지하철 무임승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에서 그 기준을 원용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포럼에서는 노인기준으로서 65세의 비현실성을 지적한 바 있었으며 대한노인회에서 65세 노인기준을 70세로 올리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 연령기준을 다시 정하는 문제를 논의 연구하고 있지만 모든 분야의 합의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65세라는 연령기준을 사용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알아보자.
65세를 고령자 복지를 위한 기준으로 처음 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인 1889년에 독일의 철혈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가 당시 경제발전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사회보험을 시작하면서이다. 당시 65세는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규모로 누가 보아도 도와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전형적이 노인의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65세를 노인 기준 연령으로 한 것이 아니고 복지급여 연령으로 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195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전쟁 전후의 베이비 붐, 경제성장, 교육수준의 향상 그리고 공중보건의 발달로 신생아, 영아 사망률을 위시한 전체인구의 사망률이 급속하게 감소하게 됨에 따라 인구의 급속한 증가현상이 예상되어 인구조절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가족계획운동이 일어났고 인구학(人口學, demography)학이라는 학문이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각 국가의 인구구조의 현황을 비교하기 위해 인구 학자들이 모여 각국의 상대적 고 연령자의 비율을 비교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로 65세 연령을 사용하였고 UN에서도 이 지표를 받아들였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기대 수명은 약 40~45세였으며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은 2~3% 정도로 현재의 85세 이상이 차지하는 수준이다. 당시 65세 이상 인구는 전형적인 개념에 맞는 노인들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 노인의 연령기준으로 삼았고 현재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사회 모든 지표와 국민의 건강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60여 년 전에 정한 이 기준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학적인 관점으로 보아 정부가 정책적으로 일률적으로 노인과 노인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연령기준을 정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므로 노인연령 기준 제정 자체를 폐지하자는 의견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노인연령 기준을 정하려면 먼저 노인의 정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노인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노인이라는 특이한 의미의 용어를 쓰는 나라는 이젠 우리밖에 없다. 과거 일본에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행정적으로는 물론 일반적으로나 학문적인 용어로서 노인이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고령자(高齡者)로 대체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도 한 때 우리나라의 노인에 비유되는 호칭인 aged person을 이제 elderly 나 senior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어떤 연령에 이른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은 무엇보다 가치 중립적이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노인이라는 호칭이 주는 개념은 나이가 들어 허리도 굽고, 걷기 위해서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모든 생산적인 역할이 끝나고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 부족으로 사회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죽음을 앞둔 불쌍한 사람들을 일컫는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개념은 이미 어린이들의 동요에도, 시조에도 반영되고 있다. 노인이라는 호칭은 현재 고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호칭이기도 하다. 과거 한때 장애인을 병신이라고 호칭한 적이 있지만 이제 그러한 호칭은 더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둘째, 현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수준으로 보아 대개 50대까지는 건강수준이나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 연령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60을 넘어서면서부터 같은 연령대라고 해도 건강수준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며 70-100세에 가면 그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따라서 어떤 나이를 기준으로 노인과 노인이 아닌 사람을 구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노인의 기준은 개개인별로 정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한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만일 무리하게 정한다면 아직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많은 고령자를 노인으로 분류하여 당사자들의 기를 억압하고 사회적으로 뒤안길로 밀어내는 대상을 정하는 것이 된다. 지지난해에 모 국회의원이 모 공사 감사로 임명을 받는 분의 나이가 70대 후반인 것을 지적해 집에서 쉬워야 할 나이라고 당사자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 사건이 기억난다. 이는 그분의 능력이나 건강수준을 평가하기보다는 단지 일정한 나이로 사람을 분류하는 데서 나오는 부작용 중의 하나다. 그 국회의원의 머릿속에 60여 년 전에 정한 65세면 노인이라고 하는 뒤진 의식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시대에 따른 사람들의 건강수준은 연령에 따라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향상 발전하고 있다. 같은 65세라고 해도 과거와 현재의 건강수준이나 노화 정도는 크게 차이가 나며 이 차이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한 때 과거와 현재의 건강수준을 비교하려면 현재 나이에 0.8을 곱하라고 했지만 지금은 0.7을 곱하라고 한다. 현 65세의 대부분은 전혀 노인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활발하게 젊게 생활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건강한 70대는 물론 건강한 80대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건강한 90대가 현재 급속하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은퇴자들만을 고용하는 회사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만일 일률적으로 노인 연령기준을 정한다면 앞으로 평균기대 수명이 100세가 될 때까지 거의 10년마다 계속 인상 재조정해야 한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과거 노인연령 기준을 정한 이유는 복지, 은퇴, 연금지급. 지하철 무임승차, 각 관광지역의 입장료 감액 등등의 연령기준을 정하는 데 참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정책을 정할 때 이제는 자체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는 은퇴연령을 내년부터는 정책적으로 60세 로 하기로 했다. 일본은 작년부터 65 세로 정한 바 있다. 한 기업의 업무에 따라서는 고령자가 더 도움이 되는 업무도 있고 젊은이가 더 나은 업무도 있다.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은퇴 연령을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학에서는 은퇴연령기준이 따로 없다. 당사자의 업무능력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재평가해서 근무시간의 조정 또는 급여의 수준을 협의해야 하는 연령기준을 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80대가 넘는 사람의 상당수가 교수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 기준 연령이 아닌 고령자 복지연령을, 연금수급연령을, 퇴직연령을 그리고 경로사상에 의한 지하철 무임승차 및 고궁의 가격 인하 등등은 각각의 형편에 따라 제정하면 된다. 어떤 하나의 기준을 무리하게 정하고 거기에 성격이 다른 여러 정책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노인 연령기준을 정할 것이 아니라 이를 없애고 복지, 연금, 은퇴 등의 연령기준을 각각 정책에 맞도록 정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