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65세 이상 신규취업자에 대해 실업급여 지급 대상에 제외하는 현행 고용보험법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13자로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실업급여 지급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고용보험법 제10조 제2항, 연령기준을 상향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현행 고용보험법 제10조는 ▲1개월간 소정근로시간 60시간 미만인 사람(또는 1주간 소정근로시간 15시간 미만인 사람)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대상자 ▲별정우체국 직원과 함께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고령노동자는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2년 7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65세 이상 신규취업자를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현행 고용보험법에 대해서는 시니어신문 부설 ‘고령노동자권익센터'(공동대표 노후희망유니온 김국진 위원장·시니어신문 장한형 대표)와 노후희망유니온이 지난해 7월,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슈가 됐다.
고령노동자권익센터와 노후희망유니온은 지난해 7월 27일 국가인권위에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는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한 고용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양 단체는 이날 인권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보험법 제10조는 예외조항을 둬 고용보험과 실업급여 보장에 있어서 고령자에 대한 연령차별을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고령노동자의 노동권과 기본권 보장을 위해 고용보험법 10조 예외조항은 삭제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가 진정을 제출한 뒤 꼭 1년여 만에 고용보험법 개정 권고가 나왔다.
전국 124개 단체, 법개정 축구 연대체 구성
65세 이상 신규취업자를 실업급여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 조항은 고령화로 인해 일하는 시니어가 급증하는 현실과 맞물리면서 전국 12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법개정 요구로 확산됐다.
고용보험법이 최초로 제정된 때가 1993년 12월이었다. 법은 이때부터 ‘60세 이후에 새로이 고용된 자’를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했다. “재취업이 안 되니, 실업급여도 필요없다”는 논리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고, 70세 이상 고령자 2명 중 1명은 일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법은 여전히 30년 전에 머물러 있으니 당연히 개정 요구가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급기야 전국 124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4월 4일 오전 국회 앞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입법 촉구 연대회의’(연대회의)를 출범했다. 노후희망유니온 등 법 개정을 요구한 소수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단체의 목소리가 전국 단위로 확산됐다.
국가인권위, “65세 제외 고용보험법은 차별” 명시
국가인권위가 고용노동부장관을 대상으로 ‘고용보험법을 개정하라’는 주문을 결정한 날은 지난 7월 13일이었다. 국가인권위 측은 10월 24일 노후희망유니온에 법 개정 권고결정 사실을 뒤늦게 알려 왔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고령노동자권익센터와 노후희망유니온이 2022년 7월 27일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 지급 대상자에서 만 65세 이상은 배제하는 조항은 차별’이란 취지로 제기한 진정과 관련, “법률에 기재된 사항이어서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각하했으나, 정책 부서로 이관해 검토를 지속했고, 그 결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관련 규정을 상향할 것을 권고하는 정책권고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현행 ‘고용보험법’ 제10조(적용 제외) 제2항은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을 65세 이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해 피보험 자격을 유지하던 사람과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한국 노인빈곤 심각, 실업급여 지급해야”
인권위는 우선,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과 실업급여를 동시에 받으면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그간의 정부 논리를 반박했다.
인권위는 실제 우리나라의 빈곤노인에 대한 공적이전소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다수의 노인은 노동시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 점을 인정했다.
실제로,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앞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생계비 마련’이 61.9%로 가장 높았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실질 은퇴연령은 평균 72.3세로 OECD 국가 중 1위였고, 2021년 기준 주요 7개국(G7)과 한국 등 8개국 고령층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이 34.1%로 가장 높았다.
인권위는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이행하면서 변화하는 제반 사정과 노년 시기에도 일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수의 노인이 존재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사회보장제도가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변화하는 현실에 적합한 방식으로 관련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육체노동자 가동연한 65세” 대법원 판결 인용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019년 2월,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30년 만에 65세로 상향한 판결도 인권위 결정문에 인용됐다.
인권위는 “기술의 급속한 진보는 산업과 조직의 생산방식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고, 이는 인간의 노동방식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면서, “그 결과 고령에도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게 됐고, 이는 도시의 건설 현장이나 농어촌 농작업현장 등 모든 노동영역에서 마찬가지”라는 대법원 판결문을 인용했다.
인권위는 “우리나라 실질 은퇴연령은 평균 72세, 실제 임명공증인의 정년은 75세며, 일부 대학 초빙교원과 객원교원 연령 제한은 만 70세 미만, 농어촌 지역 의용소방대원 정년을 현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고 했다.
“국회도 ‘고용보험법’ 개정 입법 활발”
인권위는 “우리나라는 실제로 고령자의 경제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65세 이후에 취업한 직장에서 이직‧재취업하거나 자영업을 개시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을 65세 이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해 피보험 자격을 유지하던 사람과 불합리하게 차별해 연령차별화된 노동시장의 구조적 제약이 강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인권위는 이 문제와 관련, 국회에서 다수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을 언급하면서, “이 계류 의안은 고령자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무엇보다 65세 이후의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령자가 많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에게도 실업급여 등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인권위 “고용보험법 개정, 필요성”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고용보험법 개정 필요성을 크게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65세 이전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해 피보험 자격을 유지하는 사람과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 간의 연령에 의한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65세 이후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령자가 많다는 점.
셋째,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규모가 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빈곤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소득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 점 등이다.
인권위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에 대한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 적용 제외 규정의 연령기준을 상향해, 일하거나 일하려는 노인의 적정한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사회보장권 향유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