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정부가 내년 예산에서 6만1000개 줄이기로 하면서 ‘폐륜예산’이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 54만7000개에서 64만7000개로 10만개 늘리고, 이에 대한 예산 1611억원 증액하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안 내용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올해 60만8000개에서 내년 54만7000개로 6만1000개(10%) 감소한다.
정부는 그 대신 직업 경험이 풍부한 베이비붐세대의 노인층 진입에 따라 더 안정적이고 보수가 높은 사회서비스형·민간형 노인일자리를 올해 23만7000개에서 내년 27만5000개로 3만8000개 늘린다고 했다.
여기에 고용노동부의 ‘고령자고용장려금’ 사업 예산까지 포함해 내년 전체 노인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2만9000개, 관련 예산은 720억원 증가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 직접일자리 구조조정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내놓은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직접일자리 사업은 노인일자리 외에 다른 일자리는 축소하는 식으로 구조조정하고 초격차 전략기술을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는 당시 일자리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종전 재정지원을 통한 직접일자리 창출에서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직접일자리 사업은 노인일자리 외에 다른 직접일자리 사업을 축소하는데, 노인일자리사업도 시장지향형으로 전환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단기 알바’라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의 직접일자리사업 3개 중 1개의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직접일자리 대부분이 빈 강의실 불 끄기, 금역구역 지킴이,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등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고 판단해 대폭 축소하고, 민간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우려1-소득삭감 가능
정부 예산안과 노인일자리사업 정책 방침에 대해 6만 개가 넘는 공공형(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취업이 힘든 고령자들이 생계를 잇는 수단이 사라져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반발이 나왔다.
이 같은 우려와 반발은 노인복지현장은 물론, 노인 관련 단체와 기관들을 중심으로 거세게 제기됐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4일 “윤석열 정부가 노인일자리를 6만1000개나 삭감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면서, “이것은 패륜 예산”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노인, 특히 75세 이상 후기고령노인에겐 절실하다. 75세 이상 노인의 38%만 국민연금을 받는데, 연금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노령연금(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수급자는 30%에 불과하다.
75세 이상 연금수령자의 평균 연금은 24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연금도 받지 못하는 노인은 기초연금(30만7500원)에다 노인일자리 수당을 합쳐 약 58만원의 수입이 들어온다. 올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생계급여) 58만3444원에 비슷한 금액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히 일자리 넘어 노후소득보전이란 또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정부 예산안에 대한 우려2-양극화·빈곤심화
정부 예산안 핵심은 사회서비스형·민간형 노인일자리를 늘리고 60세 이상에 적용되는 고용장려금제도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용장려금사업은 정년연장에 합의한 사업장 등 법률상 노인연령기준인 65세보다 젊은 60세 내외를 주로 지원한다. 즉, 노인일자리사업의 목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게다가, 사회서비스형·민간형 노인일자리의 경우 소득 외에도 개인의 역량·자격증·경력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저소득·저학력 노인층의 빈곤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실제로,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기초연금 수급자, 즉 소득하위 70% 이하만 참여한다. 매년 11월 말~12월 신청을 받아 다음 해 참여자를 정한다.
참여자를 선정할 때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포함한 소득인정액과 활동능력, 참여경력 등을 점수로 매긴다. 소득이 선정 여부를 좌우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매달 생계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위에 있는 차상위계층 중심으로 참여한다. 경쟁이 심해 9월 기준 9만1385명이 대기자로 올라있다. 노인인구 22%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길 원하기 때문에 항상 수요가 더 많다.
비난 탓 입장 바꾼 정부
노인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정부도 입장을 바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심사 과정에서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 내년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올해보다 6만1000개 줄인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다시 확대하는 걸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추 부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저소득층 등 어르신들 사이에 민간 취업이 힘들어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지적하자 “단순 일자리 등을 기다리는 연로하신 분들이 현장에 많은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추 부총리는 “(내년 예산안은) 그동안 노인빈곤율 개선 효과가 적었던 단순 노무형 공공 일자리 부분을 줄인 것”이라며 “임금이 높고 양질인 민간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로 전환해 구조화했는데, 단순 노무형 쪽에서 줄어드니 전체적으로 노인일자리가 많이 줄었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회도 예산 증액 가능성
정부 입장이 바뀜에 따라 국회도 예산을 올려 심사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최근 노인일자리를 10만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겼다. 정부안 54만7000개에서 10만개 늘어난 64만7000개로, 예산은 1611억원 늘었다. 올해 60만8000개와 비교해도 3만9000개 늘어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넘긴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내년 공공형 노인일자리가 올해부터 이대로 확정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최소한 올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철규 의원은 16일 한 언론에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