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취업이 늘면 청년층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른바 '일자리세대갈등론'이 또 다시 불거져 나왔다. 사진은 2014년 전경련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는 모습.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자리세대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시니어신문

이른바 ‘일자리 세대갈등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식적으로 처음 문제 제기한 이래 6년 만이다. 이번에는 국책연구기관, 정부의 씽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위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일자리 세대갈등의 핵심은 고령층 취업이 늘면 청년층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고령화가 심화되고 평균수명이 늘면서 고령자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현안이 됐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정년연장이 시행되고 있지만 세대간 일자리 경합, 심지어 세대간 일자리 전쟁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반면, 일자리 세대갈등은 없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고령층과 청년층이 서로 일자리를 빼앗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고령층의 일자리가 대체로 저소득·단순노무직에 몰려 있어 청년층과 겹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KDI 한요셉 연구위원, “정년연장 1명 늘면 청년층 고용 0.2명 감소”

한국개발연구원은 한요셉 연구위원은 최근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란 자료를 냈다. 정년 연장 혜택을 받게 될 근로자가 1명 많을수록, 고령층 고용은 0.6명 증가하는 반면 청년층 고용은 0.2명 줄어든다는 것. 따라서 정년 연장이 급격하게 이뤄질 경우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년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요셉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DB의 정보를 확보, 기업 단위별 연구데이터를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 제도를 도입한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봤다”고 했다.

2013년 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이른바 ‘고령자고용촉진법’은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60세 이상 정년을 의무화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2016년 1월 1일부터, 그 외 사업장과 국가·지방자치단체는 2017년 1월 1일부터 개정법 적용을 받았다.

“정년연장 필요하나, 너무 급하게 늘리지 말자”는 주장

이번 연구는 한 마디로 정년 연장은 필요하지만, 너무 급하게 연장 폭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년을 한 번에 큰 폭으로 증가시키는 방식은 민간기업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 이유다.

정년을 크게 늘려야 하는 기업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과 같은 정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신규채용을 줄여 청년고용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제도적인 정년 연장이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더라도 충분히 긴 기간에 걸쳐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충분히 흡수될 만한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령 인력의 직무설계를 포함한 노무인사관리의 변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 현재 출생연도 4년당 1살씩 증가하고 있는 국민연금 수급 개시연령의 변화 속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세대갈등론’ 지속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이 제정된 이후 사회 전반에서 정년 연장으로 세대간 일자리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듬해인 2014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자리 세대갈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전경련 측은 “젊은층은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자신의 미래 비전을 키울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중·고령층은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살리는 세대간 직업 분업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장년층 고용이 청년층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세대갈등론’에 대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세대 간 일자리 경합이 아니라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일 뿐이며,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대립’으로 규정짓는 사회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일자리 세대갈등 없는 이유 ①고령층 고용 높으면 청년층 고용도 높아진다

일자리 세대갈등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고령층과 청년층 사이 일자리 세대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론이다.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이 제정되기 직전인 2012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OECD 20개국 청년고용과 고령자 고용의 대체관계’를 연구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이 연구분석에서 첫 번째 의미 있는 결과로, 중고령층 고용률이 높을수록 청년층 고용률도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점을 꼽았다. 중고령층 고용률이 높을수록 청년층 고용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점은, 고용률이 특정 연령세대간 대체관계가 아니란 사실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세대간 대체성이 강하지 않은 만큼, 중고령자들이 조기퇴직으로 일자리에서 물러나도, 청년층 고용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중고령자들의 정년이 연장된다고 청년층 고용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

일자리 세대갈등 없는 이유 ②종사하는 일자리가 서로 다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연구분석에서 두 번째로 강조하는 점은,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이 분리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즉, 고령자 대부분은 청년들이 꺼리는 저임금·단순노무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일자리 세대갈등이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노인인려개발원은 보고서에서 “중고령층의 고용률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선됐지만, 일자리의 질은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고령자들의 저임금 노동은 이른바 ‘고용 속의 빈곤’(Armut trotz Arbeit) 즉,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저임금 노동이라는 점이다. 이들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낮고, 파견근로나 단시간 근로라서 고용의 질이 낮기 때문에 청년층이 바라는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 이상 취업과는 질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다만, 청년층 고용이 악화되면서 과거처럼 청년들이 처음에 큰 규모의 사업체에 취업했다가 이후 나이가 들면서 소규모 사업체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10명 중 6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체에 취업하고, 10명 중 3명(34%)이 10인 미만 영세사업체에 취업하면서 세대갈등처럼 보인다는 것. 하지만, 이 경우도 질적으로 청년층과 고령층의 일은 겹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일자리 세대갈등 없는 이유 ③조기퇴직 늘어도 청년일자리 늘지 않는다 입증

노인인력개발원은 OECD 20개국 청년층과 중고령층 고용을 분석해 4개의 유형을 도출했다.

첫째로, 청년층과 중고령자 고용이 모두 높은 유형. 미국, 노르웨이, 스위스, 호주, 캐나다, 덴마크, 영국이다. 고령층 노동과 청년실업 문제를 ‘노동수요 확대’라는 하나의 정책으로 풀어가는 나라들이다.

두 번째, 청년층 고용은 비교적 안정되지만 중고령자 고용은 낮은 유형. 오스트리아, 핀란드, 독일, 네덜란드다. 연금제도가 훌륭해 나이 들어 일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세 번째, 청년층 고용도 낮고 중고령자 고용도 낮은 가장 나쁜 유형이다. 벨기에,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다. 1970년대부터 세대간 일자리대체설이 대두되면서 조기퇴직정책을 추진한 나라들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청년층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 번째, 세대간 일자리대체설이 부각되기 쉬운 유형으로, 청년층 고용은 낮고 중고령자 고용은 높은 유형이다. 한국, 일본, 스웨덴이다. 하지만 고령자의 일자리 질이 낮아 조기퇴직도 어려운 나라들의 유형이다. 따라서 고령층과 청년층 모두 상생 가능한 정책 도입이 필요한 나라들이다.

노인인력개발원은 “노동은 특정 연령계층만의 특권도, 혜택도 아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근로연령기 내내 안정되고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또 누릴 권리가 있다. 앞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노동기회와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