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반발로 노인복지시설이 문을 열지 못하는 님비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도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jtbc 화면 캡쳐

서울 마포 한 대형 아파트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며 노인보호시설 입주를 반대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노인 주간 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2019년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인구 6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 인구는 어느 나라보다도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2025년에는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고 노인인구 비율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이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와중에 노인보호시설을 놓고 이해할 수 없는 님비현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우리 단지는 어린이집이나 체육시설이 더 어울린다”

서울 마포의 한 대형 아파트 곳곳에 노인주간보호시설인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시설이 들어서는 장소는 아파트 입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A문화건강센터 건물.

마포구는 이 건물 지하 1층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최대 38명의 노인을 돌봐주는 100평 규모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인테리어 공사까지 다 해 마쳤는데, 주민 반대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선다는 건물은 조합원들이 기부채납한 건데 왜 주민 동의 없이 노인 요양원을 들이느냐. 우리 단지에는 어린이집이나 체육시설이 더 어울린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마포구는 “기부채납한 건물의 소유권은 구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시설을 들일지는 구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데이케어센터, 노인성질환자와 가족에겐 ‘노치원’

2009년 도입된 노인주간보호시설 ‘데이케어센터’는 노인성 질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다. 유치원이 어린이들을 위한 돌봄, 학습, 친교의 장소라면, 데이케어센터는 노인들에게 유치원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래서 ‘노인유치원’ ‘노치원’으로 통한다.

데이케어센터는 낮에 보살펴 드릴 사람이 없는 노인들을 돌봐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하기 힘든 물리치료, 체조나 요가를 비롯한 각종 신체활동,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같은 인지치료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경증 치매환자의 경우 다양한 인지활동을 통한 자극이 치매의 진행을 막아주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노인들이 서로 위로와 공감을 얻음으로써 정신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배움의 과정을 통해 자존감의 향상을 경험하게도 된다.

어르신 가족에겐 생업 위한 ‘필수’ 센터

데이케어센터는 이용자 어르신 가족의 삶의 질 향상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다. 치매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과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한시도 곁을 떠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데이케어센터는 그런 간병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환자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게다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시설 이용비의 85%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고 나머지 15%만 가족들이 부담하면 된다. 이처럼 만족도가 높다보니 지자체들의 관심도 커서 최근 전국적으로 데이케어센터를 확충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번 마포의 경우처럼 전국적으로 데이케어 센터를 설립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반대이유, 데이케어센터가 위험하다?

데이케어센터를 반대하는 현상은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서울 마포구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를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은 겉으로는 노인 시설이 위험하다는 이유를 댄다.

지난해 한 민간센터가 대전 대덕구의 105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에 데이케어센터 도입을 추진하자, 이 단지 주민들은 인근에 아이들이 이용하는 놀이터가 있어 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시설공사를 반대하기 위해 건물 주변에 그물을 쳐 공사 차량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서울 금천구에서도 2017년부터 독산동에 데이케어센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이 인근에 어린이집이 있어 노인들과 동선이 겹치는 게 불안하다는 이유로 반대해 3년 넘게 삽도 못 뜨고 있다.

해도 너무하는 노인복지시설 ‘님비’

이처럼 노인시설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는 이유는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yard) 탓이다. 노인시설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시설이고, 이 때문에 집값이나 땅값이 떨어지니 내 집 주변에는 들어올 수 없다는 주장. 따라서, 집값이나 땅값이 비싼 곳에서는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일례로,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도 각종 기반·복지시설 건립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조직적 저항은 부촌인 강남 일대에서 유난히 심하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지역 구청 민원 홈페이지 게시판엔 노인복지시설과 같은 특정시설 설치에 반대하는 민원들이 구별로 많게는 수백 건씩 올라온다.

심지어, 강남구에선 대학생,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글들도 올라온다. 이 지역 주민들이 노인복지시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주민들이 이용할 시설인데…

노인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주민들이 ‘나와 이웃을 위한 시설’이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대부분의 기반시설·복지시설은 주로 해당 지역 주민이 사용하게 될 곳이다. 결국, 주민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데, 조망권 침해, 소음과 같은 작은 불편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게 문제다.

노인장기요양기관의 경우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요양등급 1~2등급 어르신들을 보호·관리하는 복지시설이다. 강남 3구에서는 최근 10년 새 노인인구 비율이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독거노인 문제가 커다란 현안으로 등장했다. 그런데도 일부 주민은 혐오시설도 아닌 요양시설이 인근 아파트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침해한다며 입주를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치매 노인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상식 밖 주장도 서슴없다. 한 민원 게시판에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들이 산책하고 돌아다니는 길에 우리 아이가 지나가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같은 일을 겪으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주민인식 전환이 답이다

최근 마포구에서 데이케어센터 설립을 놓고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한 데 대해 서울시도 주민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앞으로 이 같은 시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유치원을 이용하는 것처럼 어르신들도 집 근처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에서 데이케어센터를 추진하다 무산된 업체 관계자도 “반대 서명운동에 나선 주민들의 부모들도 나이가 들게 될 것이고, 당사자인 주민들도 결국 이 센터의 이용자가 될 텐데 반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시민들이 이 같은 시설을 포용하는 자세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