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정부가 지난 8월 30일 국무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을 총 639조원으로 의결한 가운데 노인일자리를 축소하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지원해 주도하던 직접일자리사업을 상당 부분 없애거나 줄이고 민간 중심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 일자리예산을 올해보다 1조5000억원 줄어든 30조340억원으로 정했다.
일부에선 “민간기업에 취업하기 힘든 고령자를 위한 공공형 노인일자리사업이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간 급속히 확대된 공공형 일자리의 경우 베이비붐세대의 노령층 진입과 같은 변화된 여건을 반영해 일부 조정하는 것”이라며, “대신 민간 취업과 연계되는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공공형 일자리 6만1천개 줄여
정부 내년 예산안 639조원 가운데 보건복지부 예산은 108조9918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 97조4767억 원 대비 11.8% 늘었다. 노인일자리사업 예산도 54억5000만원 증액됐다. 하지만,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리기로 했다. 전체 노인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2만3000개 줄어든 82만2000개로 잡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높은 역량과 다양한 근로 욕구를 가진 베이비붐세대를 위해 공공형 노인일자리 수는 올해 60만8000개에서 내년 54만7000개로 6만1000개 줄이기로 했다.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는 올해 23만7000개에서 내년 27만5000개로 3만8000개 늘어난다. 따라서 전체 노인일자리 수는 올해 84만5000개에서 내년 82만2000개로 2만3000개 줄어든다.
고용부, 고령자고용장려금 대폭 확대
고령자 일자리와 관련, 정부는 고용노동부 예산에서 고령자고용장려금을 확대하기로 했다.
고령자고용장려금은 60세 이상 고령자를 신규 채용할 때 지원하는 고령자고용지원금과 정년 이후 계속고용하는 고령자계속고용장려금으로 구분된다. 2가지 모두 해당 기업에 고령자 1인당 월 30만원씩 2년간 지원하는데, 올해 처음 시행됐다.
고용자고용지원금 예산이 올해 54억원(6000명 분)에서 558억원(5만3000명 분)으로, 고령자계속고용장려금은 108억원(3000명 분)에서 268억원(8200명 분)으로 늘어난다.
정부, 예산 투입 직접일자리 구조조정 방침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내놓은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직접일자리 사업은 노인일자리 외에 다른 일자리는 축소하는 식으로 구조조정하고 초격차 전략기술을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는 당시 일자리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종전 재정지원을 통한 직접일자리 창출에서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직접일자리 사업은 노인일자리 외에 다른 직접일자리 사업을 축소하는데, 노인일자리사업도 시장지향형으로 전환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2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단기 알바’라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의 직접일자리사업 3개 중 1개의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고 보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즉시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공공은 물론 민간일자리 창출에 정부재정을 집중 투입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직접일자리의 대부분이 빈 강의실 불 끄기, 금역구역 지킴이,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등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고 판단해 대폭 축소하고, 민간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국회서 “노인일자리 축소 우려”
정부의 직접일자리 축소 방침과 관련, 8월 18일 열린 399회 국회 임시회 환경노동위원회 1차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비례)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고령자들을 노동 강도와 경쟁이 센 시장영역으로 내몬다면 얼마나 살아남겠느냐”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고용노동부에서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평가 및 개선방안이라는 것을 만들어 일자리 사업의 내실화를 기한다는 명목에 우회적으로 어르신들 일자리를 구조조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면서 “특히 공공형 중심에서 사회서비스형, 즉 시장형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 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시장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현재 시장 속에서 경쟁에 살아남는 사업을 하라는 것”이라며, 공공형을 포함한 노인일자리사업 축소를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장관은 “(노인일자리사업) 적정규모는 유지해 가겠다”면서, “자존감, 기여도, 자부심, 건강증신, 헌신 보상 이런 측면을 고려해 단순하고 단시간 하는 노동을 줄이고, 과거의 경력이라든가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인들 소중한 생계 수단 없어진다” 걱정도
이 같은 정부 예산안과 노인일자리사업 정책 방침에 대해 일부에선 “내년에 6만개 넘는 공공형(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사라진다”면서, “취업이 힘든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찾는 ‘복지 일자리’가 축소되면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8월 31일 정부가 시장형과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비중을 늘리기로 한 데 대해, “시장형·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는 은퇴한 베이비부머를 위한 이른바 ‘신노년세대 맞춤형’ 일자리이고, 지원 연령도 만 60세 이상”이라면서, “‘젊은 노인’을 타깃으로 한 일자리이기 때문에 75세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들이 진입하기엔 장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보도에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구인회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27만원은 큰 금액이 아니겠지만 공공 일자리에 생계를 의존하던 노인들에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이라며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고 어려운 분들의 일자리를 한꺼번에 많이 없앤 것이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부, “일자리수 소폭 축소, 예산 오히려 증액”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취업이 힘든 고령자분들께는 공공형 일자리가 계속 제공될 수 있도록 해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 부처는 “2017년 35만2000개에서 올해 60만8000개로 급속히 확대된 공공형 일자리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층 진입 등 변화된 여건을 반영해 일부 조정하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노인일자리 축소 우려에 대해서도 “공공형 내 환경정화·공공근로 등 단순 유형은 돌봄·안전 등 공익적 가치가 높은 일자리로 개편하면서, 취업이 힘든 고령자분들께는 공공형 일자리가 계속 제공될 수 있도록 해 고령층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고령층 진입과 관련, “직업 경험이 풍부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한 베이비부머 세대 어르신들께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제공해 일자리 질을 개선한다”며, “내년 노인일자리 수는 소폭 축소되나, 투자규모는 오히려 소폭 증액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령자 고용장려금이 9000개(명)에서 6만1000개(명)로 된 점을 감안하면, 전체 노인일자리는 85만4000개에서 88만3000개로 2만9000개 증가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