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이길상 기자] 우리나라 고령층은 평균 71세까지 전일제로 일하기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여전히 열악한 고용환경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의 ‘고다자’란 말이 상징하듯, 대부분의 고령층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령층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내용은 경기연구원이 최근 전국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 500명을 설문 조사한 내용을 담은 ‘증가하는 노인 노동, 일하는 노인의 권리에 주목할 때’란 보고서를 통해 나왔다.
부족한 노후소득, 일로 내몰리는 노인들
공적소득보장 수준이 낮은 한국 노인들의 주요 소득구성원은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이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중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57.1%인 반면, 한국 노인들은 25.9%로 OECD 평균의 절반 미만이다. 반면, 한국 노인의 주요 소득원은 근로소득으로, 총소득의 52.0%를 차지해 OECD 평균(25.8%) 대비 높다.
근로소득을 위해 2명 중 1명의 노인이 경제활동 참여하고 있고, 자영업보다 임금근로자 비중이 훨씬 높은 상태다.
전체 노인 중 절반에 달하는 45.5%가 경제활동참가에 참가하고 있다. 취업자 10명 중 7명(69.6%)이 60대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70대는 24.2%, 80대 이상은 6.1%였다.
남성 노인의 56.6%, 여성 노인의 36.3%가 경제활동 참여하고 있는데, 70대 초반까지는 남성 노인 취업자 규모가 컸지만, 70대 후반부터 여성이 앞질렀다.
고령 임금근로자 대부분 임시·일용직
노인 임금근로자 중에서는 임시직 비율이 높고, 자영업자도 5인 미만을 고용하는 영세자영업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노인 노동자 중 임금근로자 비율은 57.6%, 자영업자는 34.1%였다.
종사자 규모 4명 이하의 영세사업체에서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57.5%에 달했고, 임시직 및 일용직에서 일하는 비율도 33.2%로 높게 나타났다. 100명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비율은 5% 미만이었다.
자영업자 대부분은 영세자영업자로 고용원이 없거나 5인 미만인 자영업자가 33.2%, 5인 이상인 고용주는 0.9%에 불과했다. 영세자영업자가 아닌 고용주도 대부분 종사자 규모가 10명 미만의 소기업 고용주에 해당했다.
월평균 임금 167만원, 전체 평균 대비 100만원 낮아
노인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67만4000원이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73만4000원보다 100만 원 낮은 수준이다.
남녀 격차도 컸다. 남성 노인의 평균 임금은 월 218만6000원, 여성 노인은 113만원으로 성별 임금 격차는 고령자들의 노동시장에도 존재했다.
고령자들이 많이 분포한 임시직에서는 임금격차가 더 컸다.
임시직 월평균 임금은 101만3000원이었다. 임시직은 상용직(167만4000원)이나 일용직(145만8000)원보다 훨씬 적었다.
연령별로 민간·공공일자리 나눠 투입해야
일자리 사업 개선과 고령자 친화적 근로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인 일자리정책은 노인세대 내 이질성을 반영해 세분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첫째, 신체적 능력과 생산성이 높은 전기 노인(65~74세)은 공공형 노인일자리사업보다 자격과 능력, 은퇴 전 일자리 경험을 고려한 민간 일자리를 적극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인들은 평균 71세까지, 시간제보다 전일제로 일하기를 원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고용서비스를 통해 민간 일자리 연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평생교육 등 노인 인력에 대한 사회적 투자도 노인의 취업가능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생산성과 신체적 능력 저하가 수반되는 75세 이상 후기 고령층은 민간 일자리 진입장벽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공공 일자리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현행 공공형 일자리사업은 근로시간이 짧고 임금수준이 낮으며 근로자로서의 지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민간 일자리 진입은 쉽지 않지만 일하기 원하는 경우 근무시간, 임금 수준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일자리 사업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합법적 대우도 받지 못하는 고령노동자들
고령자 친화적 근로환경 조성 위해 고령노동자 고용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특히, 일자리가 필요한 고령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고용주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 폭염이나 혹한기에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 간이화장실 부재 등 고령자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고 있다.
휴게시간 보장이 법으로 규정돼 있으나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고 사업주가 휴게시간 적용을 피하기 위해 단시간 근로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령 노동자가 집중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는 고용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어 주휴수당, 연차휴가, 퇴직급여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열악한 일자리에서 강요받는 무리한 노동은 건강을 해치고 추가적인 비용 발생으로 안정적인 노년기를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령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해 고령 노동자 고용과 활용에 대한 지역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노인복지법 등 관련 법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나 노인 고용에 대한 환경적 기준에 대한 조항이 없다. 지역별 가이드 라인은 조례 제정을 통해 고령 노동자가 경험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중앙정부의 노력도 촉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조합 활성화·공적연금 인상도 해결책
고령자의 노동이 강요가 아닌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고령 노동자들의 협상력 강화가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소득을 높여 열악한 일자리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소득보장 수준이 낮은 경우 생계비가 필요한 노인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고령 노동자를 일컫는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라는 용어가 생겼다.
고령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과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조합 활성화도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령 임금근로자의 대부분 임시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비정규직이 갖는 차별적 대우와 연령으로 인한 차별을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가입률은 4% 미만이며, 특히 영세사업체에 집중되는 임시일용직의 가입률은 0.2~0.4%로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또한, 고령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없어 가입할 기회가 없는 경우가 90%에 가깝고, 일용직 노동자의 97.6%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노동조합 활성화를 통해 최저임금 보장, 휴게공간과 휴게시간 등 쉴 권리 보장, 불법 해고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연대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고령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근무조건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초연금 인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포함한 공적연금 체계 강화를 통해 소득보장 수준을 높일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의 기초연금, 국민연금 및 기타 연금을 합한 총 연금 수급액은 1인 기준 평균 48만 원에 불과하다.
연금 수령액을 높여 생계를 위해 열악한 일자리에 내몰리는 고령 노동자가 감소할 때 근무조건 개선을 위한 기반이 마련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