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전용 주차구역이 논란이다.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조례 대부분이 의무 조항으로 제정됐지만, 세부적인 설치 규정이 미흡한 데다 강제력을 지닌 별도의 제재 조항도 없어 유명무실하단 지적이 나온다.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이 논란이다.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조례 대부분이 의무 조항으로 제정됐지만, 세부적인 설치 규정이 미흡한 데다 강제력을 지닌 별도의 제재 조항도 없어 유명무실하단 지적이 나온다.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일부 지자체가 관공서에 설치한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이 논란이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노인 전용 주차구역 필요성을 검토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인단체를 중심으로 각 지자체 별로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운전면허 반납을 권장하는 상황에서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고령화에 따라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면서 각 지자체 별로 운전면허 반납을 독려하는 상황에서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는 것은 정책 간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원주노인회, 노인 전용 주차구역 요구

최근 강원 원주시가 청사 내 주차장에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조성해 시범 운영키로 했다.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면서 이동권을 배려하기 위한 사업이다.

원주시가 시범적으로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조성키로 한데는 노인단체의 요구가 있었다. 대한노인회 원주시지회가 2월 23일, 원창묵 원주시장 간담회에서 시청사와 행정복지센터에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마련해 줄 것을 건의한 것. 고령자들은 운전이 능숙하지 않은 데다 빈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주차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노인 배려 차원에서 전용 주차구역을 마련해 줄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원주시는 시청만이라도 수요조사를 통해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문 출입구와 가까운 주차장에 2~3면 정도를 검토하고 있다. 이곳에는 장애인 주차구역 11면과 임산부 전용 주차구역 2면도 설치돼 있다.

일부 지자체, 노인 전용 주차구역 조례 제정

이미 노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위해 조례를 지정한 지자체도 있다. 서울 노원·서초, 광주 광산·북구, 대전 대덕구, 울산 남구, 경기 광명·구리·성남·시흥·안성·안양·포천·하남, 전북 군산·익산·정읍·남원·고창 등의 자치단체가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조례를 제정, 운영 중이다.

전라북도는 가장 최근인 지난해 6월,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현 조례’를 제정했다. 공공기관, 공공시설에 ‘어르신 운전자 전용주차구역’을 설치해 70세 이상 어르신 운전자의 이용 편의를 도모하고,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문화를 확산하기 위한다는 취지다.

전라북도 조례안은 공공시설의 주차장 주차대수 50대 이상인 경우 2% 범위에서 반드시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도록 규정하도록 했다. 주차면 수 50대에 1대, 100대에 2대 꼴이다. 바닥에 노인 전용 주차구역 표시를 해야 하고, 전용 주차구역 안내표지도 달아야 한다. 다만,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여성 등 다른 교통약자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공용으로도 설치 가능하도록 했다.

서울 서초구가 가장 빠른 2017년 6월, 조례를 제정했다. 만 70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이고, 서초구 청사를 비롯해 서초구가 위탁 관리하는 공공시설에는 반드시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후 다른 지자체들도 연이어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조례를 제정했다.

의무설치라도 제재 없어 실효성 의문

어르신 전용 주차구역 조례 대부분이 의무 조항으로 제정됐지만, 세부적인 설치 규정이 미흡한 데다 강제력을 지닌 별도의 제재 조항도 없어 유명무실하단 지적이 나온다.

노인단체의 요구에 따라 시범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원주시의 경우 노인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별도의 설치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아 관련 부서가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에 대한 정의와 주차 위반에 대한 단속, 벌칙을 비롯해 고령자 차량을 표시하는 관계 법령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는 조례라도 제정했지만 원주시는 조례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과 같은 강제력이 없어 ‘노인 전용’이 무색한 실정이다. 조례 대부분이 노인뿐만 아니라 여성운전자, 유아를 태운 운전자, 임산부나 임산부를 태운 운전자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노인 전용 또는 우선이란 취지조차 무의미한 실정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19년 조사한 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관련 법규에 설치 근거와 제재 규정이 마련돼 운영상태가 양호했지만, 노인이나 임산부는 주차 관련 기준이 없어 시설 설치나 방법이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공서, 상업시설, 공동주택 10곳씩 30곳의 주차구역을 조사했지만 노인 전용은 5곳, 임산부 전용은 4곳에만 설치돼 있었다.

“운전면허 반납하라면서, 전용 주차구역?”

노인 전용 주차구역 지정 관련 법적 근거가 없는 것보다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고령운전자 운전면허 반납제도’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해마다 늘어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인센티브까지 제공하며 추진하고 있는 노인 운전면허 자진반납 정책과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주민센터에서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자진반납’과 ‘인센티브 지원’을 한 번에 신청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과 부산에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원스톱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고, 8월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신청자가 운전면허증과 함께 신청서만 내면 끝이다. 원동기를 포함한 모든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10만원 한도의 교통카드가 지급한다.

서울시의 경우 70세 이상 운전면허 반납자는 2018년 1236명에서 2019년 교통카드 지원 사업이 추진된 이후 1만6956명으로 약 14배 증가했다.

전북도, 조례 제정 혼선 겪기도

전라북도에서는 지난해 노인 전용 주차구역 조례 제정을 놓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도가 산하 출연기관과 도내 시·군 공공기관에 노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반론 탓이었다. 한편에선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노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를 추진하는 것은 정책간 괴리를 부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었다.

전북지역 언론에 따르면, 전라북도는 지난 2019년 조례 제정을 위해 주차면 50면 이상의 산하 출연기관이나 시·군청 등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었다. 당시 전주시와 정읍시, 무주군 등 전북도내 일부 시·군은 조례를 통해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독려하고 있었다.

특히, 전북도의회도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조례를 도의회 본회의에 상정하고 있었다.

당시 도의회에서는 “노인 복지와 예우 측면에서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겠다는 취지를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조례와 상충된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노인 전용 주차구역 관련법 제정 ‘최우선’

노인 전용 주차구역에 대한 논란을 끝내고, 고령자·임산부와 같은 교통약자의 주차 편의를 확보기 위해서는 국회가 관련 법규를 제정하는 것이 최우선이란 지적이다.

현재 노인 전용 또는 우선 주차구역의 경우 별도의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각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마련해 주먹구구로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의 조례는 강제성도 없을뿐더러 대상이나 시설설치, 운영방식도 제각각 이어서 혼란을 빚고 있다. 민간주차장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노인 전용 주차구역을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대상 가운데 주차구역은 ‘장애인 주차구역’만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을 비롯한 노인과 임산부의 편의 증진을 위한 전반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