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공단이 지난 2018년 서울 광화문에서 마련한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사진=도로교통공단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정부가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고령운전자에 대해서는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고 속도를 제한하는 등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연령차별 아니냐는 반발과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3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 점검회의’를 열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각 부처와 지자체 이행사항과 성과를 점검하고, 올해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토부 “고령운전자 운전 제한 검토”
국토교통부는 이날 회의가 끝나고 “고령 운전자 안전을 위해서는 교통비를 지원하는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지속 추진하는 한편, 운전능력을 평가해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특정 조건’에 대해 ▲야간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을 거론했다. 추가적으로 “고령자가 운전하는 차량을 위한 첨단안전지원장치 장착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고령 운전기사 자격유지검사도 강화
국토부는 또, 고령 운수종사자와 관련, 65세 이상 버스⸱택시⸱화물차 운수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자격유지검사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택시‧화물차 운수종사자 의료적성검사 기준도 강화할 예정이다. 연구용역을 통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실질적 안전 강화방안을 검토할 계획도 내놨다.

이와 함께, 노인보호구역 지정기준을 복지시설 중심에서 전통시장 등 노인 보행자가 많은 장소까지 확대하고, 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참고조례안을 각 지자체에 배포하기로 했다. 고령 보행자를 위한 보행섬⸱조명시설 등의 특화 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스마트 횡단보도도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고령운전자 사고 사례 급증
실제로 고령운전자가 개입된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일인 지난 8일, 전북 순창군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화물트럭이 조합장선거를 위해 대기 중이던 인파를 들이받아 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조사결과, 74세 고령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려다 착각하고 가속페달을 밟아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선, 지난 3일 오전 2시 5분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에서 차량 한 대가 역주행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조사결과 이 차는 남구미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와 부산 방향으로 달리던 중 갑자기 유턴했다. 이 차는 서울 방향으로 7km가량 역주행했지만,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경찰조사결과, 70대 운전자는 조수석에 동승한 70대 부인과 함께 치매 증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통안전 수준 OECD 평균 이하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수준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중하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0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5.9명으로 OECD 평균 4.7명에 비해 1.3배 많은 수준이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는 1.1명으로 OECD 평균 0.8명에 비해 1.4배 많다.

보행 사망자와 고령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에서 보행 사망자는 34.1%, 고령사망자는 46.0%를 차지해 OECD 대비 각각 1.9배, 1.7배나 많다. 교통안전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고령운전자 급증, 사고도 정비례 
고령운전자가 급증하면서 고령자가 개입된 교통사고도 덩달아 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13.3%에서 24.3%로 11.0% 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 비율 증가율 5.4% 포인트와 비교할 때 약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고령운전자 사고 역시 급증하고 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근 5년간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고령 운전자 사고는 9.7% 감소한 반면, 고령운전자 사고는 19.2% 증가했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중 약 47%인 498만명이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2040년에는 76%인 1316만명이 운전면허를 소지할 것으로 전망돼 고령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운전대 놓으면 생활 안돼”
하지만, 운전면허 자진반납 등으로 무조건 운전을 못하게 하는 정책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운전대를 놓을 경우 생활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손수 운전할 경우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볼 일을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3~4시간 이상 걸리는 실정이다. 간단한 업무도 버스를 타고 반나절 이상 걸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운전대 놓기가 쉽지 않다.

농촌지역에서는 이동 목적뿐만아니라 농업 용도로 트럭을 많이 사용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하루에도 수차례 농기구나 비료를 싣고 논밭을 오가야 한다. 비료나 농약이 떨어지면 도시지역 시장에 다녀와야 한다. 1포대에 20㎏인 비료를 사 들고 버스나 택시를 타기도 어렵다. 차 없이는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어촌 지역은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이 매우 낮다.

참조할 만한 해외 사례
미국은 고령운전자 관리를 위해 대부분의 주에서 면허갱신주기 단축이나, 의료평가, 도로주행시험, 제한면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운전능력에 따라 일정 조건이 부과된 면허를 발급받는데, 지역주행시험을 거쳐 거주지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면허도 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75세에서 80세 사이 운전자는 4년, 81세에서 86세는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이때 도로주행시험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고령 운전자가 많은 일본은 70세 이상의 경우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한다. 75세 이상은 인지기능검사도 받는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신차는 페달 오조작 방지기능을 기본으로 다는 추세다. 차량 전후방에 설치되는 주차 센서를 이용해 벽면이나 장애물이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 ECU가 엔진의 연료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의 경우 75세 이상이면 매년 운전적합성 의료평가와 운전실기평가를 받아야 한다. 85세 이상 운전자는 2년마다 의무적으로 운전실기평가를 받아야 한다.

국토부, “65세 등 대상 나이 검토 안 해”
한편, 국토교통부는 16일 발표된 조건부 운전면허 관련, 연령차별 논란이 제기되자 급히 해명자료를 내고, “경찰청이 도입 검토 중인 ‘조건부 운전면허’는 신체·인지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운전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교통안전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검토 중인 대책”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조건부 운전면허는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를 제한적으로 선별해 안전운전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일부 보도에서 65세 이상이 조건부 면허 대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대상 나이 등은 전혀 검토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